정부 잦은 개입으로 쌀시장 '고장'났다

2017-11-22 10:14:06 게재

민간연구소 분석

현 상황 지속불가

정부가 쌀시장에 자주 개입해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결정 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금 같은 쌀시장은 지속될 수 없어 정부가 쌀정책을 어떻게 펼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제안이 뒤따랐다.

국내 대표적인 민간농업연구소 GS&J(이사장 이정환)는 최근 발표한 '내년 단경기 쌀가격과 양정의 결단'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명환 GS&J농정전략연구원장은 22일 "쌀가격은 시장에 맡겨 수요 공급 균형을 이루고, 농가의 소득은 직접지불제를 통해 해결한다고 한 2004년 양정개혁 구도가 무너졌다"며 "작동하지 않고 있는 정부 양정정책 구도를 포기하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지, 아니면 2004년 구도를 재정비해 철저지 집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GS&J는 최근 산지 쌀값이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는 공급과잉으로 이어지고, 정부가 쌀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생산조정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kg당 15만 3124원으로 10일전에 비해 0.6%(900원) 올랐다. 10월 5일자 햅쌀 가격이 9월 25일자 묵은 쌀 가격 대비 13.2% 급등한 후 상승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내년도 단경기(농산물의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훨씬 적어지는 시기)에 쌀가격이 수확기 가격보다 낮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원리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이 많은 수확기보다 공급이 적은 단경기에 오히려 쌀값이 내린 역전현상(역계절진폭)은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7년간 12번 발생했다. 추세적으로 최근 역계절진폭은 4~6%에 달한다.

김 원장은 "역계절진폭이 확대된 것은 정부와 농협이 무이자 벼 매입자금을 지원하고, 수확기 추가 매입 조치를 반복해 수확기 쌀값이 수급상황을 반영한 정상가격보다 높게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4년 정부의 추곡수매를 없애고 직불제를 도입하는 양정개혁을 하면서 '쌀값은 시장에서, 소득은 직불제로'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수확기 쌀값이 낮다는 농민들 목소리가 나오면 정부가 개입해 쌀(벼)을 매입한 게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올해도 1조2000억원의 벼 매입자금을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지급하고 농협중앙회도 RPC운영조합에 1조9000억원의 벼 매입자금을 지원했다. 2004년 양정개혁 이후에만 수확기 추가 매입을 7회 시행했다. GS&J는 수확기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시장격리량을 늘리고, 이것이 다시 생산을 유인하는 요인이 돼 공급과잉을 부추겨 정부 재고가 증가하고, 결국 논에 쌀 아닌 다른 작목을 심으라며 예산을 투입하는 '생산조정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