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빛나-서울 하늘 아래

르 클레지오의 시선으로 본 '서울'

2017-12-15 10:41:22 게재
J. M. G. 르 클레지오 지음 /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 / 1만4000원

"이 책을 출간한 것은 제 인생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서울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서울에서 들은 많은 얘기들, 실제 얘기, 꾸며낸 얘기, 전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나이든 경찰 출신이 어머니가 어렸을 때 38선을 넘어온 얘기를 해 줬습니다. 어머니는 비둘기 1쌍을 가지고 와 길러 자손을 번식시켰고 그 비둘기들이 고향인 북쪽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쪽에 갈 수 있다는 소박한 이상이 비둘기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아주 감동적이고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소설에 그 얘기를 실었습니다."

14일 오후 2시 서울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개최된 장편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빛나')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J. M. G. 르 클레지오(77)의 말이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1년 한국에 처음 방문한 이후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로 1년 동안 강의했으며 지난 10월 제주 해녀를 다룬 중편소설집 '폭풍우'를 펴냈다. '빛나'는 한글판과 영문판 ('Bitna-Under the Sky of Seoul')으로 동시에 출간됐으며 프랑스어판으로는 2018년 3월 출간된다.

14일 오후 서울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르 클레지오의 빛나-서울 하늘 아래 ( 빛나 )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연합뉴스

'빛나'의 주인공 빛나는 전라도 시골 출신 19세 대학생으로 서울에 처음 올라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PRS)로 죽어가는 40대 여자 살로메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액자소설로 빛나가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5편의 일화들이 녹아 있다. 북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비둘기를 키우는 아파트 수위 조씨, 절망에 빠진 이웃을 구하는 미용실 원장과 키티, 보육원에 버려진 아기 나오미와 간호사, 탐욕스러운 이들의 희생양이 되는 아이돌 가수 나비, 빛나를 좇는 스토커 등이 등장하는 일화들이다.

그는 "서울은 많은 얘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놀라운 도시이며 오래된 얘기뿐 아니라 현대의 얘기가 생성되는 도시"라면서 "빛나가 움직이지 못하고 병들어 있는 여인에게 만들어낸 얘기를 해 주면서 도시에 대한, 삶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어 "새벽 6시쯤 신촌에 가 보면 저녁의 파티를 마치고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어디선가 노인들이 나타나 종이를 모은다"면서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들을 따라가 보고 싶었고 그 모든 얘기들을 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빛나'에 등장하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직접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찾아 다녔다. 예컨대 남산도서관 벽에 걸려 있다고 나오는 윤동주의 시는 그곳에 정확하게 있다. 직접 방문하며 하나하나 실제로 느끼며 썼기 때문에 관념적이지 않은 일상적인 평범함에서 의미를 끄집어낸 소설이 됐다. 마치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는 "서울은 한 장소가 6개월~1년 후 없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성되는 것이 인상적"이라면서 "남쪽 주택가, 서민 동네, 학생들이 사는 대학가 등 서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도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은 중국,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큰 나라는 아니지만 풍부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갖고 있는 놀라운 나라"라고 강조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송현경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