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달러체제 도전' 가속도

2017-12-22 11:06:27 게재

러시아 위안화 국채 발행

위안화 원유선물 곧 출시

러시아 정부가 최근 9억달러 상당의 국채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 표시로 발행키로 했다. 사상 첫 위안화 국채다. 9억달러의 발행규모는 중국 인민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 1조달러나 미국 연방정부 부채 20조달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하지만 의미와 파장은 명목금액을 훨씬 넘어선다는 지적이다.
중국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한 100위안 지폐. 사진 연합뉴스

미국의 전략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은 21일 온라인매체 '글로벌리서치' 기고문에서 "미국의 일방적 금융제재가 있을 경우 달러의존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라며 "미국의 제재 대상국인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세계 2대 경제대국인 중국도 달러시스템을 우회하는 대안체제를 강도높게 추진중"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8월 서방 주요국에 의해 디폴트 사태를 겪은 러시아는 이후 국가금융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정부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6%로, 주요 산업국 중 가장 낮다. 2014년부터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대러 경제제재를 견디는 힘이기도 하다.

러시아 재무부는 위안화 표시 국채 발행을 계획중이다. 발행 규모는 60억위안(9억1300만달러)이다.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은행과 중국은행, 중국공상은행이 발행을 맡는다.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현행 제재를 러시아 국채로까지 확대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 이뤄진 조치다.

서방의 경제제재는 달러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 위안화 국채 발행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달러체제 도전'도 눈길을 끈다. 이달 13일 중국 금융당국은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취급할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계약'과 관련한 최종 점검을 마쳤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 국가다. 국제 원유선물 시장은 미 월가은행들과 뉴욕, 런던의 선물거래소가 꽉 잡고 있다. 위안화 표시 원유선물 거래의 중심지로 상하이 선물거래소의 부상하게 된다면, 달러 표시 중심의 기존시장에 큰 위협이 된다.

1970년대 일어난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산 원유 가격이 400% 오른 바 있다. 이후 미국은 석유거래 시스템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특히 달러로만 석유를 거래한다는 '석유달러'(Petro-Dollar) 시스템에 대한 도전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석유달러 체제에 대한 두 차례 도전이 있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로, 달러 대신 유로화, 골드디나르(gold dinars)로 석유를 거래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미국 주도의 공격을 받아 제거됐다. 이제 중국이 '석유위안'(Petro-Yuan)을 통해 석유달러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이 앞서의 이라크, 리비아와 다른 점은 러시아와 이란 등 강력한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출시할 원유선물이 매력적인 점은 거래대금으로 받은 위안화를 중국 자산이나 미 달러로 교환할 필요없이 금선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해외경제무역위원회 국제화·현대화 국장인 왕즈민은 "석유선물을 금선물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 현재 지배적 사업자인 브렌트유, 서부텍사스유 벤치마크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나 이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은 모두 미국 경제제재 대상국이다. 미국 제재의 기본 토대는 달러시스템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가 달러체제를 우회할 수 있다면, 미국의 제재 영향력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베네수엘라는 국영 석유회사와 트레이더들에게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거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10월부터 '외환동시결제'(payment versus payment)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의 결제 전산시스템을 상호 연결해 매도통화의 지급과 매입통화의 수취를 동시 처리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 간 원유 거래는 루블화 또는 위안화로 결제되고 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분쟁에서 미국의 외면을 산 카타르 역시 액화천연가스(LNG)를 중국에 판매하면서 위안화를 받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사우디도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하자는 중국 측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를 후한 조건으로 받아안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국제사회는 사우디가 조만간 '1974년 미국과의 석유달러 밀약'을 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란 무역진흥기구 위원장인 베흐로즈 하사놀파트는 최근 국영 프레스TV에 출연해 이르면 내년 2월 '유라시아경제공동체'(EEU)에 합류하겠다고 밝혔다. EEU는 2015년 출범한 국제협력기구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즈스탄 등이 회원국이다. 회원국 간 재화와 서비스,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적으로 한다. EEU는 1억83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시장으로 8000만명의 이란이 합류한다면, 중앙아시아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영향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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