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새로운 기축통화' 예언 2018년 글로벌 통화시장 뒤흔들까

2017-12-29 10:13:38 게재

이코노미스트 기사 관심

30년 전 새로운 기축통화의 등장을 예고한 한 주간지의 예측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최근의 암호화폐 열풍, 석유달러의 퇴조 등과 맞물리면서다.

1988년 1월 9일자로 발간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306호 표지사진

영국의 세계적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88년 1월 기사에서 "2018년 '피닉스'라 불리는 새로운 기축통화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스위스프랑 대비 유로화의 붕괴를 예측해 유명세를 탄 경제논평가 에곤 폰 그레이어즈는 증시전문매체 '킹월드뉴스' 기고에서 "30년 전 예측이라기엔 믿기 어렵다. 실제 내년에 글로벌 통화시장에 격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단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들이 솔깃할 구성요소가 많다. 일단 이코노미스트사 주요 주주엔 많은 엘리트 가문과 금융인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그레이어즈는 "그렇다면 이는 매우 오랜 시간 누군가가 기획한 것인가 아니면 이코노미스트지가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으로 우연히 맞춘 것인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내년 세계 경제와 통화금융 시장을 뒤흔들 주요 사건은 뭘까. 대략 2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달러의 쇠퇴다.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레이어즈는 "달러의 몰락은 일어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라며 "달러는 세계 통화시스템의 기반으로서 자질이 없다"고 지적했다.

'석유달러' 퇴조와 '석유위안' 등장

1971년 달러와 금의 연동이 끊어진 이후 금가치 대비 달러가치는 98% 폭락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다. 달러는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로도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예를 들어 1971년 이후 스위스프랑 대비 달러가치는 77% 하락했다.

달러는 대규모 부채(국채)와 적자 위에 선 위태로운 통화다. 미국은 1960년 이래 실질적 재정흑자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1975년 이래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기록중이다. 달러는 부채, 그리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에 기반한 통화다. 그레이어즈는 "제 명을 넘어 덤으로 주어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석유달러의 몰락과 석유위안의 부상이라는 상황이 교차된다. 1974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금융, 군사적으로 전폭 지원키로 했다. 조건은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석유달러'(petro-dollar) 체제를 확립한다는 것. 당시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사우디로부터 석유를 구매하던 때였다. 따라서 석유달러 체제는 석유 수요에 비례해 달러 수요를 만들어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레이어즈는 "달러가 제 명을 넘어 44년 동안 목숨을 부지한 이유"라며 "하지만 2018년부터 석유달러 비중은 점차 석유위안(petro-yuan), 석유루블(petro-ruble)에 잠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 이란 등과의 무역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나 루블화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원유거래와 관련해 조만간 위안화 표시 선물계약을 내놓을 전망이다. 나아가 상하이거래소의 금선물과도 연계할 방침이다. 석유달러 대신 석유위안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그레이어즈는 "반면 미국은 중동에서 군사력의 확장을 꾀하는 것말고는 달러체제 우회 흐름을 막을 방도가 사실상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원유생산 측면에서 사실상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이제 사우디는 대미 원유수출국이 아니란 얘기다. 따라서 사우디가 서양에서 동양으로 활동영역을 옮긴다 해도 미국에겐 이를 막을 방도가 딱히 없다.

암호화폐의 급부상

올해 그 어떤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통화시스템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사건은 단연 비트코인이 이끈 암호화폐 열풍이다. 올해 초 170억달러에 불과했던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이달 중순 기준 5880억달러를 넘었다. 1년 만에 30배가 넘는 성장세다. 거래되는 암호화폐 개수만 1360개 정도 된다. 그중 시가총액 100만달러를 넘는 암호화폐 개수만 589개다. 물론 비트코인은 단연 압권으로 3120억달러를 찍었다.

1360개 기존 암호화폐에 매일 새로운 '암호화폐공개'(ICO)가 열려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 하지만 그같은 점 때문에 현재 상태로는 안정적 지급결제가 가능한 통화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는 게 그레이어즈의 분석이다. 그는 "비트코인 가치는 올해 20배 넘게 올랐다. 만약 비트코인이 통화라면 2000% 인플레이션, 정확히 말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켰을 것"이라며 "하지만 비트코인은 통화가 아니다. 게다가 매우 느린 거래 승인 속도 때문에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이나 1360개 암호화페는 이코노미스트지가 예상한 새로운 통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암호화폐의 작동 원리를 실험하기 위해 특정 정부가 기획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국 '솔라리 투자자문' 이사인 캐서린 오스틴 피츠는 "암호화폐 열풍을 지켜보고 민간 개발진들이 관련 시장을 형성하도록 내버려둔 뒤, 결국 각국 정부가 적극 개입해 모든 암호화폐를 불법화하고 정부 공인의 암호화폐만 통용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이른바 '페드코인'(fedcoin)이라 불리는 암호화폐를 연구중인 상황도 그같은 음모론을 부추긴다. 2018년 또는 그후 미 정부가 디지털달러의 일환으로 페드코인을 출시하고, 부채에 찌든, 지폐와 동전 형태의 현존 달러체제를 없앤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달러 표시 모든 채권-채무관계는 옛 통화체제로 떠넘겨진다. 미 정부가 디지털달러의 통용을 진작시키고 비트코인의 선례를 따라 새로운 통화의 가치상승에 진력할 것이다. 그런 뒤 디지털달러의 상승하는 가치로 옛 체제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30년 전 이코노미스트지가 예견한 '피닉스통화'는 디지털달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금에 기반한 위안화와 루블화가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개당 가치 100만달러를 향해 가는 비트코인이 될 것인가. 그레이어즈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2018년이 전 세계 통화금융시장에 급격한 변동성이 몰아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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