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핵버튼, 미국채 덤핑 현실화?

2018-03-05 11:11:43 게재

로이터통신 등 분석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무역전쟁 선전포고를 감행하면서 해묵은 의문이 다시 한 번 국제금융계의 핫이슈로 등장했다. 외국인들이 보유중인 미 국채를 덤핑하면서 보복에 나설 것인지 여부다.

로이터통신은 4일 "중국과 일본 등 무역흑자로 얻은 달러를 미국채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갑자기 그 규모를 줄이려 한다면 전 세계 금융시장은 거센 격랑에 휩쓸릴 것"이라며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들고 나온 현재, 외국의 국채 수요를 절실히 원하는 주체는 바로 미국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테네시주 멤피스 소재 투자금융사 '레이먼드 제임스'의 채권팀장인 케빈 기디스는 "대규모 감세안으로 미 행정부는 해외의 미국채 수요를 절실히 원하는 상황"이라며 "고율관세 방침을 밝힌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 소재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수석전략가인 크리스티나 후퍼는 로이터에 "그같은 위협은 현실로 닥칠 수 있다"며 "미국은 이전보다 더 외부의 국채 수요를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공개된 미 재무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20조7600억달러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향후 10년간 약 1조5000억달러의 부채가 추가될 전망이다. 지난달 타결된 2년 시한의 지출 결의안에 따라 늘어나는 적자폭은 약 3000억달러다.

미국 재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2월말 기준 외국이 보유중인 미국채는 약 6조3000억달러다. 이 가운데 약 4조300억달러가 외국의 중앙은행, 외환보유 매니저, 국부펀드 등 공식계좌에 등록돼 있다. 시장에 풀린 미 국채 총량 14조4700억달러의 27.85%다. 중국과 일본은 제 1, 2위의 미 국채보유국으로 두 나라 합쳐 2조2500억달러를 갖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750억달러, 대일 무역적자는 690억달러였다.

미국채와 관련 외국인들은 시장의 변동성을 유발시킬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압박 선례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4월 미 의회가 9·11 테러사건에 자국이 연루됐다는 문서를 공개하려 하자 미 국채를 대거 매각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럼에도 미 의회는 문서 공개를 강행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미국의 그 어느 법정 그 어느 재판에서도 9·11 테러 연루와 관련해 유죄를 받지 않았다. 물론 미국채를 내던지지도 않았다. 또 올 1월 초 블룸버그는 "중국 관리들이 미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매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 기타 외국이 동시다발적으로 미 국채 보유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필라델피아 소재 자산운용사인 브랜디와인의 매니저 잭 매킨타이어는 "그들은 이미 많은 미국채를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채 매각으로 보복하려 한다면) 제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매체 제로헷지는 미국채 덤핑과 같은 조치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와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의 체력은 달러의 기능성뿐 아니라 미국 금리의 안정성과도 밀접히 관련돼 있다. 중국의 입장에선 미국에게 엄중경고를 하는 차원에서 보유한 국채를 매각하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불경기가 발생하면 결국 중국 수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급감하게 된다. 중국으로선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관세로 촉발시킬 무역전쟁보다 훨씬 재앙적인 시나리오다.

미국채 덤핑 파괴력이 채권시장에만 미치는 건 아니다. 제로헷지는 "외국인들은 보유중인 미국채 전량을 덤핑할 필요는 없다. 보유량 일부를 갑작스럽게 시장에 내놓는 것만으로 미 국채 금리가 치솟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지난달 초 미 증시의 급락사태와 같은 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실적을 S&P500 주가지수의 지속상승세에 빗대 자화자찬하길 좋아한다"며 "따라서 급격한 주가 하락은 트럼프 행정부를 겁박하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무역전쟁 가능성에 월가는 초긴장 상태다. 달러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채권시장은 지난 주말 엎치락뒤치락했다. 우선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미국채를 사들이면서 2일 10년물 금리가 3주래 최저치를 떨어졌다. 하지만 3일 일본중앙은행이 통화완화 정책을 중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지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게다가 곧 회사채 시장에 채권물량이 쏟아질 것에 대비해 투자자들이 국채를 팔면서 그같은 흐름을 강화시켰다. 3일 10년물 금리는 분기 최고치인 2.87%에 약간 모자란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보호무역 보복조치의 하나로 미국채를 매도하거나 최소한 덜 사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브랜디와인의 매킨타이어는 "미국채 덤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 대한 보복과 상관없이 미국채 덤핑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채 보유량을 늘렸고 일본은 줄였다. 미국채에 대한 외국의 수요에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블룸버그는 3일 "하지만 외국 중앙은행들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미국채 보유비중이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장에 풀린 미국채 총량 중 연준과 외국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비중은 2015년 45%에서 지난해말 기준 40%로 줄었다. 이는 미국 행정부가 미국 안팎의 민간투자자들에게 이전보다 더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블룸버그는 "가격에 민감한 민간 투자자들이 미국채 점유율을 늘려가면서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 커질 것"이라며 "이는 향후 미국채 금리가 상승할 것임을 예고한다"고 지적했다. 기간 프리미엄은 채권 수익률에 미치는 불확실성을 반영해 채권 장기물에 붙는 프리미엄이다.

국채 금리가 오르고 달러 펀딩 조건이 악화되면, 미국채 매입에 따른 헤징비용이 덩달아 높아진다. 외국인들로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보복조치를 떠나 미국채를 덤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는 의미다.

제로헷지는 "이제 의문은 연준에 쏠린다"며 "향후 자금난을 겪게 될 미 행정부를 위해 연준이 양적완화를 재개해 정부의 부채(국채)를 대거 매입해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외국인들이 보복 차원에서 미 국채를 덤핑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운명이 연준 수중에 놓여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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