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역전쟁의 적은 본인 … 결국 그가 무릎 꿇을 것"

2018-06-27 11:39:16 게재

예일대 스티븐 로치 "벌이는 없으면서 쓰기에만 몰두하기 때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무역전쟁이 실상은 경제를 도외시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만 골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예일대 경영대 교수이자 전직 모건 스탠리 아시아 회장인 스티븐 로치는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경제팀은 지속적으로 경제학 원리의 전통적 원칙을 조롱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실증된 '무역적자와 저축·투자 불균형 사이의 상관관계'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중국의 경제적 레버리지는 결국 미국의 낮은 저축률 때문에 가능하다. 올 1분기 미국의 순저축률(기업 가계 정부의 저축에 화폐가치 감소액 반영)은 국민소득의 1.5%에 불과했다. 1970~2000년 30년간 평균인 6.3%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저축은 부족한데 소비와 경제성장을 높이고자 하면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미국은 해외의 잉여저축을 수입해야 한다. 중국 등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규머 무역적자가 불가피한 악순환에 빠지는 이유다. 즉, 펑펑 쓰고 주어진 것 이상의 생활수준을 누리고자 하는 나라에게 무역적자는 당연한 결과라는 것.

지난해 말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본 나라는 모두 102개국이다. 그같은 불평등의 기원은 바로 미국의 부족한 저축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자신에게 있다는 게 로치 교수의 핵심 지적이다.

최근 캐나다에서 열린 선진 7개국 모임(G7)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돼지저금통에서 돈을 빼가듯, 모두가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미국을 강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치 교수는 "돼지저금통은 저축을 하기 위한 것인데, 순저축률이 국민소득의 1.5%에 불과한 나라에서 훔쳐갈 것이 얼마나 있겠나"라며 "트럼프 식의 표현대로라면 미국은 훔쳐갈 것도 없는 돼지저금통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재정정책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안은 적자를 더 늘릴 뿐이다. 트럼프 경제팀은 '래퍼 곡선'을 언급하며 세율을 낮출수록 노동의욕, 저축의욕, 투자의욕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치 교수는 "트럼프는 돌연변이 경제학에 의존하고 있다"며 "래퍼 곡선은 오랜 시간을 두고 실증적 효과를 입증한 이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지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경기순환 정점에 다가가는, 실업률 3.8%로 과열된 미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3년까지 연 평균 연방정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2%가 될 전망이다. 국내저축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해외의 미국채 수요에 더욱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로치 교수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상대국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며 도박의 판돈을 키우고 있다"며 "미 행정부에 돈을 대는 해외 나라들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로치 교수는 미국의 최대 위협이 중국이 내는 무역흑자가 아니라 기술과 군사 부문 성과라는 입장이다. 그는 "지정학적 패권 균형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중국이 범아시아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남중국해에서 정밀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동 등은 미국의 패권에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또 달러 중심 금융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신개발은행(NDB) 등을 통해서다. 로치 교수는 "고립을 자초하며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는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외부의 친구를 늘리며 지속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일대 역사학 교수인 폴 케네디의 '제국의 오버리치'(imperial overreach, 무리한 확장) 개념을 언급했다. 경제적 기초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군사적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제국은 결국 막바지에 다다르게 된다는 개념이다. 케네디 교수가 오버리치 개념을 들고 나온 게 벌써 30년 전이다. 당시 그는 "과도한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이 점차 제국적 오버리치에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의 뒤를 이어 패권국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나라들이 빠르게 소멸한 것.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 붕괴했다. 일본의 경제적 기적은 내적으로 폭발했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과 유럽통합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적절한 제어장치를 잃은 미국은 제국적 오버리치를 이어갔다. 물론 중국은 당시 미국의 경쟁상대도 아니었다. 그만큼 낙후한 저개발 국가였다.

1988년 미국의 순저축률은 국민소득의 5.6%에 불과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평균인 6.3%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다. 하지만 그 수치도 현재 저축률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많다. 당시 미국의 국방지출액은 연 2700억달러였다. 오늘날 7000억달러의 1/3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국방비는 중국과 러시아 영국 인도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독일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은 계속 부상하고 있다. 1988년 중국의 구매력기준 1인당 GDP는 미국의 4%에 불과했다. 올해 그 비율은 30%에 육박했다. 단 30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저축이 줄어드는 데도 막대한 국방비를 쓰는 미국의 빈약한 경제 펀더멘털을 힘에 기반한 정치로 상쇄할 수 있을까. 힘에 기반한 정치로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고 무력화할 수 있을까.

로치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미국이 경기순환상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기에 더없이 좋은 때라고 믿는 듯 보인다"며 "하지만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주석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시 주석은 경제와 지정학적 패권과의 연관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쉽게 이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중국을 폄하하는 동시에 미국을 과신하는 위험을 저지르는 일"이라며 "현재의 갈등은 전쟁 초기 소규모 접전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욱 강렬하고 규모가 큰 전투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향후 경제상황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무릎 꿇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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