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혁명인가 제로금리 혁명인가

2018-09-05 11:40:03 게재

NYT "셰일업계, 다음 금융위기 진앙될 수도"

약 20년 전 미국 텍사스주의 가스 사업자 조지 미첼은 지면 아래 수평 유정에 고압의 액체를 주입해 석유를 뽑아올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바로 프래킹(수압파쇄) 공법이다. 10년 전부터 프래킹은 일반명사가 됐다. 셰일석유와 셰일가스의 혁명이 시작됐다.

셰일에너지는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었다. 15년 전만 해도 미 의회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조만간 부족해질 것이라며 안달하고 있었다. 2015년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에너지를 해외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법을 폐지했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석유 생산 강국 중 하나다. 곧 석유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칠 태세다.

세계 최대 선물거래소를 운영하는 CME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에릭 놀란드는 "세계 지정학을 바꾼 혁명 중 하나"라고 칭했다.

셰일에너지 혁명으로 지진이나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보다 긴급한 문제가 세간의 주목을 피한 채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 월간 배니티페어 기자이자 '사우디 아메리카 : 프래킹의 진실과 세계의 변화' 저자인 베서니 매클레인은 지난 2일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다음번 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미국의 셰일에너지 업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매클레인에 따르면 미 월가 일각에 셰일에너지에 회의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셰일업계의 금융적 토대가 너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셰일에너지가 수지 맞는 사업'이라는 점을 증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공매도 투자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진 헤지펀드 매니저 짐 체이노스는 "셰일업계는 '돈 잡아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60대 셰일에너지 탐사 시추 정제 업체들은 운영비와 이자를 메울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중반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이들 업체는 분기당 평균 9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생존에 성공하고 있다. 일부 회의론자보다 훨씬 더 많은 월가의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자본을 대고 이자와 수수료를 떼가고 있기 때문이다.

톰슨로이터 자료에 따르면 프래킹공법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체서피크에너지'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64억달러의 주식과 155억달러 채권을 발행해 돈을 모았다. 월가엔 관련 수수료로 11억달러를 지급했다.

이는 공개된 수치만 포함한 것이다. 체서피크는 보유중인 자산을 매각한 것은 물론 파산한 엔론사처럼 앞으로 뽑아올릴 미래의 천연가스를 담보로 잡아 최소 300억달러를 은밀히 조달했다. 그럼에도 체서피크의 현금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자산매각 직후를 제외하고는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15년 초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데이빗 아인혼은 한 투자컨퍼런스에서 셰일에너지 업계에 대한 회의감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셰일에너지 탐사 시추 정제와 관련한 상장사 16곳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2006~2014년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800억달러나 많았다.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프래킹 유정과 가스전의 유효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데 있다. 캔사스시티연방은행 자료에 따르면 노스다코타주 바켄분지 유정의 평균 생산량은 첫해만 지나면 69%가 줄어든다. 3년 동안 뽑아내면 85%가 사라진다. 전통적인 유정의 경우 연 고갈률이 10%에 불과하다. 셰일에너지 업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매년 줄어드는 석유와 가스를 보충하기 위한 거액의 투자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매클레인은 "셰일에너지 업계는 막대한 투자가 지속돼야 생존 가능하다. 따라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제로금리 시대가 없었다면, 셰일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셰일혁명을 도왔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 아미르 아자르는 2015년 한해만 셰일업계의 순부채가 2000억달러라고 지적했다. 2005년 이래 300%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이자비용 증가는 부채 증가 속도의 절반에 불과했다. 연준의 저금리 덕분이었다. 아자르 연구원은 "2008년 이후의 초저금리 정책이 셰일 혁명을 자극한 진짜 요인"이라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가진 셰일업계에서는 줄도산이 낯설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4년 셰일에너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부추겨 국제유가를 인하하도록 유도했다. 생산단가 이하로 내려간 국제유가에 미 셰일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16년 중반 미국 셰일석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00만배럴 줄었다. 150여개 셰일석유, 천연가스 업체가 파산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셰일업계의 회복은 빨랐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셰일석유 생산량은 올해 하루 평균 1060만배럴에서 2023년 1210만배럴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셰일의 부활은 텍사스주 서부 지역과 뉴멕시코주 동남지역에 넓게 퍼진 '페르미안분지' 덕분이다. 1세기 전 과도한 채굴로 고갈됐다 여겨졌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2010년을 전후해 셰일업계가 프래킹 공법을 사용해 석유를 뽑아올리기 시작했다.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에 따르면 페르미안분지가 머금고 있는 원유량은 750억배럴이다. 세계 최대인 사우디의 과다르 유전에 이어 2번째 많은 규모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 프래킹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앞으로 셰일업체들이 흑자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6년 연준 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발전 덕분에 바켄분지에서 더 많은 유정을 발굴하는가 하면 각 유정에서 뽑아올리는 원유량도 이전보다 많아지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의 새로운 유정에서 뽑아내는 원유량은 2008년보다 거의 3배 가까이 늘었다고 추산된다.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오릴리언 매니지먼트 CEO인 브라이언 호레이는 "아직 업계 전반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8년 1분기 20대 셰일에너지 회사 가운데 단 5곳만 적자를 면했다.

만약 벌어들이는 만큼만 쓸 수 있다고 셰일 업체들을 규제한다면, 미국산 셰일에너지가 전 세계에 유의미한 요소는 되지 않을 것이다.

국제유가 급락 이후 다시 셰일에너지 붐을 일으킨 건 페르미안분지의 재발견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주요한 요소는 당초 셰일의 호황을 일으킨 월가가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체이노스는 “월가가 다시 셰일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두 번째 셰일 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2017년 셰일업계는 600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했다. 전년 대비 30% 늘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사적 잣대로는 여전히 낮다. 빚이 많은 셰일 기업도 아직까지는 이자를 낼 정도 여력은 된다. 게다가 은퇴자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돌려줘야 할 연기금들이 저금리에 애가 탄 나머지 에너지기업들이 발행한 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하는 헤지펀드에 대거 몰리고 있다. 사모펀드들도 마찬가지다. 셰일기업들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셰일에너지에 집중 투자하는 사모펀드들은 2015년 투자자들로부터 약 700억달러의 자본을 모았다. 2016년엔 1000억달러를 넘었다. 현재 셰일기업에 대한 전체 투자액 가운데 35% 이상이 사모펀드 주도로 이뤄졌다.

사모펀드들은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투자한 셰일 기업들의 수익성이 좋아서가 아니다. 사모펀드들은 갖고 있던 셰일기업을 매각하거나 상장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현재 미국의 금융시장이 셰일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보편적 방법인 수익구조가 아니다. 그 기업이 보유한 토지의 규모다. 한 기업이 상장에 성공거나 이미 상장된 회사에 인수된다면, 그같은 연결고리에 있는 모든 이들, 즉 사모펀드 투자자들이나 기업 경영진, 상장 또는 인수 주선 은행들은 돈을 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을 연상시킨다. 당시 ‘인터넷’ ‘온라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업들은 사이트 접속자수 또는 온라인 회원 수로 가치를 평가받았다. 그 기업들이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익이 생길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믿는 한 왜곡된 가치평가 과정은 지속된다. 단지 한순간에 무너질 뿐이다.

현재 셰일혁명이 가져온 ‘에너지 독립’이라는 표어는 ‘위대한 미국의 재건’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표어나 캐치프레이즈는 홀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 닷컴버블이든 서브프라임모기지든 경제적으로 지속불가능한 구조를 가진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 처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