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과 아동·청소년 자치공간이 만났다

2018-10-01 10:54:16 게재

서울 강동구 '꿈미소'로 돌봄 사각지대 없애

이정훈 구청장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선도"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동구립 강암경로당. '무더위쉼터' 표시가 된 현관 옆 계단은 피아노 건반처럼 검은색과 흰색으로 꾸며졌다. 2층 현관문을 여니 생활수칙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 오르기 전 어르신들에 인사하기' '쓰레기는 본인이 버리기' '예쁜 말 사용하기' '다른 사람 방해하는 행동 않기' 등이다. 3회 경고가 누적되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없단다.

서울 강동구가 노년층 휴식공간에 아동청소년 자치시설을 마련해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는 동시에 1~3세대 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다. 암사동 꿈미소 2호를 찾은 이정훈 구청장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강동구 제공


서울 강동구가 노년층 휴식공간인 구립 경로당에 아동·청소년공간 '꿈미소'를 마련,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주축이 돼 꾸려가는 공공 아동자치센터이자 소득기준과 무관하게 아이들 방과 후를 책임지는 돌봄공간이다. 1~3세대 벽을 허무는 효과는 덤이다.

꿈미소는 낮에는 경로당, 노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4시부터는 아동청소년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옛날 쌀을 빻아가던 동네 정미소처럼 아이들이 꿈과 미소를 얻길 바란다는 뜻에서 이름 붙였다.

아이들 돌봄공간이 필요하다는 주민들 요구가 출발이었다. 맞벌이가정이 많은 동네에서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시설, 경제적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부지를 찾기 어려워 구에서 운영하는 경로당에 착안했다. 여유공간이 있어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다 대부분 이용자가 오후 4시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이들 하교시간과도 맞았다.

지난해 4월 길동 기리울경로당 1층에 85㎡ 공간을 처음 마련했다. 동네 주민들이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설득, 아이들과 동거를 시작했다. 교사 한명과 대학생 봉사자가 상주해 독서·학습지도를 하고 동아리나 모둠활동, 전래놀이나 보드게임 등 놀이활동을 지원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기남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은 "회사에서 갑자기 회식이 잡혔는데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줘 고맙다는 부모도 있고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보고 간다며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로당 내부에 자치센터를 마련해 넓지는 않지만 1~3세대는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서로 어우러졌다.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뻘 아이들에 음식을 해주는가 하면 학생들은 스마트폰 사용에 서툰 노인들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한다. 김병운 대한노인회 강동구지회장은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꿈을 꾸기도 어려운데 강동에는 꿈미소가 있다"며 "1~3세대 공존도 얘기는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데 암사동에는 꽃이 피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정훈 구청장은 "어르신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경로당을 함께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밝게 뛰노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신다"며 "아이들은 물론 경로당 어르신까지 정서적으로 연결되니 만족도가 높다"고 자신했다. 지난 지방선거때 꿈미소 확대 공약을 내건 이유다. 암사동에 2호점을 마련해 이달 개소식을 열었고 천호2동에는 3호점이 들어섰다. 꿈미소가 늘어나면서 서비스도 확대됐다. 2호점에서는 간이 심리검사나 고민상담도 하고 3호점은 어린이공원 내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을 십분 활용해 야외체육활동과 매주 한차례 영화상영을 하고 매달 작은운동회를 연다. 새마을문고 강동구지회에서 아이들을 위해 두 곳에 책 100권씩 지원하기도 했다.

1~3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창의 전래놀이와 꿈미 요리교실은 정기적으로,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작은 잔치를 수시로 연다. 구는 "꿈미소를 조성할 때 아이들과 경로당 이용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아동·청소년 바람대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 자치권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강동구는 이 구청장 공약에 따라 2022년까지 12개를 계획했는데 일정을 앞당길 예정이다. 내년에는 최소 5곳을 확대한다. 동시에 지역아동센터 25개 가운데 구립 1곳을 제외한 나머지도 공공형으로 바꾼다. 독립건물을 마련해 1~3세대를 통합하는 아동·노인복지시설도 계획 중이다.

이정훈 구청장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셈"이라며 "아동·청소년 역량과 협동심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마을교사와도 연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꿈미소는 지역아동센터처럼 소득기준과 무관한 새로운 형태의 돌봄시설"이라며 "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책임있는 아동 보호'를 강동에서 먼저 실현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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