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간부 'ECB가 만든 거품' 경고

2018-10-15 10:59:34 게재
거대 중앙은행의 고위 간부가 스스로 만든 자산 거품을 언급하며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경고해 눈길을 끌었다.

유럽중앙은행(ECB) 이사이자 감사회 부회장인 사비네 라우텐슐래거(사진)는 13일 몰타중앙은행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며 "첫째 거품의 형성을 막는 것, 둘째 금융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기념사에 따르면 라우텐슐래거는 "여러 자산 부문이 중앙은행의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며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양적완화(QE) 프로그램 등 ECB의 정책을 거론했다. 현재 ECB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0.4%다. 또 QE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 국가의 국채는 물론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 등을 사들이고 있다.

ECB 정책으로 상당수의 국채와 회사채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됐다. ECB 장부는 양적완화로 사들인 자산 때문에 크게 부풀었다. 일부 국가와 기업은 사실상 공짜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주거용 주택과 주식, 채권, 상업용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은 치솟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ICE지수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럽의 정크본드 수익률은 지난해 10월말 기준 2.1%로 하락했다. 그만큼 '묻지마 투자'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즉 ECB 정책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회사채 거품을 만들었다.

라우텐슐래거 부회장은 "따라서 일부 리스크가 있다. 예를 들어 거품이 계속 쌓이고 있다. 또 자산 가격이 잘못 매겨지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자산의 진짜가치를 판단하는 데 너무 소홀해졌다. 시장 참가자들은 과도한 유동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리스크는 ECB 통화정책의 결과"였다며 "통화정책이 금융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고 말했다.

단지 금융 부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그림자 금융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라며 "그림자 금융은 거대하다. 유렵연합 금융 시스템의 4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CB는 금융 안정성에 대한 위험을 방관할 수도, 방관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라우텐슐래거는 또 "ECB 정책 도구들은 은행과 기업, 심지어 정부의 행동을 전혀 다른 쪽으로 유인했다"며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은 투자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지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구입하면서 가격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ECB가 더 많이, 더 오래 채권을 사주면 사줄수록 가격이 왜곡될 위험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ECB의 '금융안정성검토 보고서'를 언급하며 4가지 핵심 리스크를 지적했다.

첫째 시장의 심리는 갑자기 바뀐다. 이는 자산시장 가격을 강제로 조정하며, 실물 경제의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 둘째 은행은 여전히 구조적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만약 구조적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전 금융적 또는 경제적 조건이 악화되면 은행은 실물경제에 자본을 대는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셋째 현재 공적부채 민간부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수많은 나라의 가계와 기업, 정부가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넷째 비은행 금융권의 유동성이 은행 부문과 매우 밀접히 연관돼 있다. 비은행권은 또 자신들끼리 얽혀 있다. 이들의 포트폴리오는 비슷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라우텐슐래거는 "ECB의 당면 도전과제는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지 않고도 이러한 리스크를 어떻게 시장과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다. 중앙은행은 시장에 어느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은 의사소통을 통해 시장참가자들에게 보다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격려해야 한다. 또 시장을 지도해야 한다. 리스크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면서 금융 부문의 취약점들을 고치기 위한 보다 투명한 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온라인 금융전문 매체 '울프스트리트'는 "거대 중앙은행의 고위급 임원이 매우 신중하게 전하려고 한 말은 '공짜 돈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것, '공짜 돈의 시대가 자산거품을 포함해 많은 종류의 문제점을 일으켰다는 것'"이라며 "그는 이제 그 거품이 꺼질 때가 됐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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