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트럼프, 아베 노린다"

2018-12-10 11:38:50 게재

닛케이아시안리뷰 "미중 무역전쟁 성과없자 일본에서 전리품 찾을것"

미중 무역전쟁이 90일간 휴전에 돌입한 가운데, 가시적인 전리품이 필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을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닛케이아시안리뷰의 금융전문 칼럼니스트이자 2006년 'G2'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윌리엄 페섹은 9일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간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일본의 경제를 망쳐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페섹에 따르면 아베 신조 총리는 2년 전 대담한 베팅을 감행했다. 가장 먼저 트럼프의 절친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2016년 11월 미 대선이 끝난 직후 아베 총리는 트럼프 당선자의 자택인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를 찾았다.

하지만 현재 아베를 제외한 그 어떤 외국 정상도 트럼프의 친구가 되기를 원치 않는 상황이다. 때문에 아베 총리의 도박은 점차 위험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점차 궁지에 몰리면서 가시적 성과물을 확보하는 데 조바심이 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 사업체와 관련해 금융 및 기타 기록 확보를 위한 소환장 발부를 허가했다. 또 러시아 게이트 수사가 트럼프를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관련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태세다. 90일 동안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휴전키로 했지만 시장의 기대감은 냉랭하기만 하다. 페섹은 "이제 아베 총리와 일본이 미국과 전선을 이루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의 내년도 업무일지는 빼곡하게 차 있다.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이민관련 법을 완화해야 한다. 또 판매세를 올리고, 내년 5월 새로운 일왕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르노와 닛산자동차의 경영권 분쟁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한다면, 아베 총리는 커다란 악재에 노출된다. 1980년대 이후 최장기인 일본의 경제확장이 위협받게 된다.

페섹은 "그동안 아베 총리는 이상하리만큼 백악관에 순종적이었다"며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존경하는 태도보다 상황에 따라 강온 양면으로 대하고 있다. 그는 아베를 중국 시진핑 주석보다 훨씬 쉬운 '봉'(easy mark)으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를 재팽창시키고 노동자 임금을 높이겠다는 아베노믹스는 올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참이었다. 하지만 올초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무역전쟁이 닥쳤다.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가 부과됐다.

미국은 이어 중국의 대미 수출품 2500억달러어치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부과 대상을 2배 늘리겠다는 위협도 가했다.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6.5% 선에서 마감될 전망이다. 일본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의 하락세는 국내 소비를 되살리려는 아베 총리의 노력에 역풍으로 작용한다.

낙관적 순간도 있었다. 소니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기본급을 평균 2% 올렸다. 하지만 일본 기업 나머지 상당수는 기본급 인상이 아닌, 기존처럼 보너스 노선을 고수했다. 영구적 기본급 인상과 달리 한 차례 상여금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 때문에 노동자들과 이익을 나누려는 기업 경영진의 사기는 꺾였다. 2012년말 이후 30% 넘게 수출이 늘었지만, 일본 경영진들은 지갑을 열려 하지 않는다. 또 일본중앙은행의 2% 물가인상률 목표치 달성도 복잡해졌다. 이제 무역전쟁이 중국의 수요를 꺾어놓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보너스는 물론 투자까지 삭감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미국이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은 미국 내에서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대미 자동차와 부품 수출액은 지난해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에서 기록한 적자 690억달러의 75%를 차지한다. 자동차와 부품에 25%를 부과한다면 아베노믹스가 의존하는 아시아의 공급망은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제너럴모터스(GM) 대량 해고 사태에서도 간접적 피해도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GM이 북미지역에서 1만4000명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최근 뉴스를 매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섹은 "트럼프가 도요타와 닛산, 혼다자동차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은 그리 억지스럽지 않다"며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일본이 꺼려하는 쌀과 쇠고기, 기타 산품에 대한 고율 관세를 대폭 낮추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의 작전은 트럼프와의 공식 무역협상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F35기를 포함해 미국의 군수품을 더 많이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페섹은 "하지만 제로섬 게임을 신봉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유일한 친구인 아베 총리로부터 더 많은 것을 기대할 것"이라며 "일본의 지연 전략은 점점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73개월 연속 확장국면에 있는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상대국에 '환율조작 금지'를 요구하는 데 익숙하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33% 하락했다.

트럼프 요구대로 엔고를 용인해야 한다면 일본의 거대 수출기업들은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일본으로선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11개국과 맺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문호를 더욱 개방하거나,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유럽연합과의 교역을 2배 이상 늘려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대신 중국과 더욱 밀착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페섹은 "하지만 아베가 이끄는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자기장에 머무르려 할 것"이라며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노믹스와 일본의 경제확장세를 파괴하는 걸 막기 위해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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