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어린이재활병원

2018-12-17 09:55:48 게재
최권호 우송대 교수 사회복지아동학부

지난 11월 22일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실태를 모니터링하는 인권보고대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1989년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유엔가입국가가 비준한 가장 강력한 국제 협약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 당시 북한과 함께 아동권리협약을 채택, 비준하였다. 비준한 국가는 5년마다 아동권리협약의 이행실태를 보고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2017년 자체 국가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고서 제출 이후 1년 간 우리나라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보고대회를 갖게 된 것이다.

어린이재활병원 공공성 부족

지난 여름은 유례없이 무더웠다. 필자는 7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여러 영역 중 장애아동의 권리 이행실태 점검을 담당하게 되었다. 마침 지난 7월은 대전에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애썼던 시민단체 토닥토닥 대표 김동석씨가 청와대 앞에서 일주일간 탈진해 가며 뙤약볕 아래 매일 1004배를 했던 때다.

그는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이 결정된 기쁨도 잠시, 공공성의 부족을 지적하며 거리에 나섰다. 때마침 2017년 대한민국 정부의 자체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서 내용 중 장애아동과 관련하여 건강과 생존의 기본적 문제가 다소 부족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 운동을 이끌었던 김동석씨는 왜 여전히 지금의 어린이재활병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권역별’임에도 ‘권역’을 포괄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수요예측 용역 연구에 의하면 대전을 포함한 충남·북 권역 재활의료수요 입원환자 수는 고작 361명에 그친다. 이 361명 중 228명은 이미 대전 및 충남·북 권역에서 제공 받았기 때문에 추가 미 충족 수요는 133명이 된다. 이 133명이라는 수치에 기반해 필요 병상 규모가 산정되었고, 그 결과로 대전과 충남·북을 포괄하는 어린이재활병원 병상 규모는 30병상으로 결정되었다. 이 복잡한 숫자계산에는 간단한 논리가 빠져 있다. 모든 근거가 된 361명은 바로 2016년 이미 의료서비스에 진입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즉 의료전달체계의 취약성 때문에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미루었던 수많은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공공’임에도 ‘공공성’이 거세되었다. 토닥토닥이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목소리 높여 외쳤던 이유는 시장에 아무리 요구해도 돈이 되지 않는 중증장애 어린이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장애아동들의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하는 교육, 가족에 대한 통합적인 돌봄 등이 시장 중심 기존 의료전달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된 어린이재활병원 운영주체는 결국 여러 이유로 기존의 의료기관에 위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운영과정에 시민참여 담보해야

셋째 시민이 설립을 주도한 병원이지만 설립추진의 과정에서 시민이 빠졌다. 시민은 이슈만 던지고 모든 일은 전문가가 한다는 상황이다. 물론 보건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분야다. 그러나 전문가 믿고 수많은 세월을 기다렸던 당사자들이 과연 이 병원이 장애아동을 위해 제대로 운영될 것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비전문가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어딘가 뼈아픈 기시감이 있지 않은가. 병원 설립과 운영의 제반 과정에 당사자와 시민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에도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11월 22일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실태를 발표하며 “과연 우리나라는 장애아동의 권리와 관련하여 특히 모든 권리에 선행하는 생존의 조건인 ‘건강관리’의 기회가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제공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건우아빠 김동석씨, 그리고 수많은 건우들의 가족이 흘리는 눈물의 이유일 것이다.

최권호 우송대 교수 사회복지아동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