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개념 '고졸취업' 해법은

"학교-기업-학생 만족할 사회적합의 끌어내야 성공"

2019-02-08 11:31:54 게재

'현장실습' 이분법적 평가도 문제 … 강요 아닌 자발적 참여 필요

유 부총리 "기업 참여 늘리고 학생 안전·권익 시스템 구축할 것"

"취업률 지표에만 매달리면 문재인정부 고졸취업 정책도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학교,학생, 기업)에서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기적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부모와 교사, 정부도 서로 신뢰를 갖고 기다려줘야 하고요" 경기도 성남시 특성화고 한 모 교장이 고졸취업에 대한 사회적 대안을 제시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기업(일자리)은 충분한가?" "학교는 기업이 원하는 기능인을 배출하고 있는가?, 학생들의 실력은 충분한가?" 7일 전주 한 특성화고 진로담당 박 모 교사가 던진 메시지다. 박 교사는 "한국 정부와 기업, 학교는 10년 동안 미래사회 변화를 이끌 신산업분야 일자리를 충분하게 준비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의 고졸취업과 청년일자리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취업률에만 급급하면 '땜질식 처방'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성화고 교장과 교사들은 '현장실습' 환경이 고졸취업률을 떨어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취업을 한다 해도 이직률이 높고, 평생직장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모나 학생들이 고졸취업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고 장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은혜 부총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부천 중소기업을 찾아 현장실습 중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교육부 제공


목숨이 위험한 현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취업이 급한 학생들이 왜 알바수준의 열악한 '현장실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지도 헤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시민단체나 언론은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특성화고 교장들이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실을 모르는 무지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비판에 앞서 충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교육시민단체의 청와대 앞 시위도 아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먼저 아이들이 값싼 노동력을 열악한 중소기업에 팔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 학교가 나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31일 현장실습 개선책을 제시한 정부에 대해서도 "아직 신뢰나 실행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신뢰관계가 형성 될 때까지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들과 토론하는 유은혜 부총리. 사진 교육부 제공


◆ 특성화고 교육과정 재정비 시급 = 특성화고 교장과 진로·취업담당 교사들은 정부정책과 교육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고졸취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고졸취업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우수한 인재로 구성된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일반고 학생이다. 마이스터고는 입학과 동시에 자신의 원하는 분야나 전공, 기업까지 결정하고 학교교육과정을 소화해낸다. 3학년이 되면 현장실습과 함께 90% 이상이 취업을 결정한다. 기업도 현장실습이라는 검증을 거쳐 채용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특성화고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일반고 학생들이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을 한다 해도 1~2년 안에 퇴사할 것으로 판단,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값싼 노동력을 쉽게 구하겠다'는 기업의 기존 입장을 버리지 않는 한, 열악한 현장실습 환경은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기업 생산품 설명듣는 유은혜 부총리


따라서, 고졸취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원하는 기능인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공'과 무관하게 '알바'수준의 현장실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 열악한 환경임을 알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의 힘든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고3 특성화고 교실은 점심시간 이후에 텅 비지만 학교는 별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특성화고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업이 원하는 기능교육보다 이론수업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현장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론수업에 집중할 경우 취업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성화고 교육과정이 '대학 축소판'이라는 지적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25일 기업출신 현장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겠다며 제시한 개선안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성화고를 취업보다 '대입' 창구로 활용하는 편법운영도 문제다. 수도권 일부 특성화고는 입학당시부터 취업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특성화고 특별전형'을 대입 목표로 삼고 1학년부터 대입공부를 시킨다. 고졸취업률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세 번째는 현장실습을 거쳐 취업을 했다가 1~2년 안에 퇴사하는 경우다. 이들은 취업은 하지만 평생직장 개념의 '희망'을 갖지 않는다.

취업 후 곧바로 퇴사한 이들을 기다리는 곳은 전문대학교다. 그렇다고 전문대학에서 기업이 원하는 기능을 충분히 배우고 익히는 것도 아니다.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고졸취업자들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무늬만 특성화고인 중소도시 학생들과,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일반고 학생들의 처지다. 지방 중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런 특성화고 취업률은 거의 '0'수준에 가깝다. 원하는 기업도 없을 뿐 아니라, 학교도 추천할 의지가 없다.

학생들도 취업에 대한 생각이 없다. 어차피 기업이 원하는 '실력'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인천의 한 특성화고의 경우 전공교사도 부족하지만 학생들도 배울 생각이 없다. 올해 졸업하는 최 모 군은 "졸업 후 절반은 '배달의 기수'로, 나머지 절반은 술집이나 음식점 등 알바시장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무늬만 특성화고'와 일반고 아이들은 정부 정책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지만, 정부나 시도교육청은 뾰족한 대안이 없다.

◆ '후 진학제도' 본연 취지 살려야 = 취업을 했지만, 평생직장으로 희망을 갖지 못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기업 구조도 문제다. 대전 00마이스터고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한 김 모 씨. 김 씨는 올해 대학석사과정에 등록했다. 하지만, 공익근무 기간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김 씨는 처음엔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학 과정을 설계했다. 하지만, '3교대 근무'라는 회사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방송통신대를 거쳐 대학과정을 마쳤다. 석사과정을 공부중인 김 씨가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고서도 대졸자 인정을 받지 못한다. 입사 당시 회사가 설정한 트랙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졸 대우를 받으려면 퇴사 후 재입사를 해야 가능하다.

이렇게 기업문화가 실력보다 '고졸(마이스터, 특성화)이냐 대졸이냐'는 트랙을 처음부터 설정하기 때문이라는 것. 대졸 대우를 받기 위해 다니는 직장에서 퇴사를 했다가, 재입사를 해야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고졸취업 희망 사다리'는 허구에 불과하다. 간호조무사가 평생 일해도 간호사가 될 수 없는 구조와 비슷하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중심으로만 모집하는 것도 문제다. 특성화고 미달사태가 발생하면서 인기학과 중심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예로, 제과제빵, 화장품 등 방송이나 언론에서 소개한 화려하고 주목을 끄는 분야로 학생들이 몰린다. 하지만, 막상 졸업 후 일자리는 바늘구멍이라는 게 특성화고 교사들의 분석이다.

전자나 기계 분야는 정원을 못 채우는 경우도 허다해 국가 기간산업을 위협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눈높이를 낮추고 미래지향적인 학과를 신설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교사양성도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정부의 일방적 규제도 문제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고가 터지자 '수학여행 전면 금지령'을 내렸다. 본질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않고 껍데기만 만지작거리다 학부모와 학교의 불신과 저항에 부딪혔다는 게 교장들의 지적이다.

특성화고 교장들은 유은혜 부총리에게 '관련 부처와 기업의 융합전략'을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정부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부처간 벽을 낮추지 못하거나, 기업들의 참여정도가 미약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장실습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대안과 잠금장치를 만들어가야 함에도 관련 부처와 기업, 학교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정책 신뢰도 높일 방안은 =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직업계고등학교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에 직업계고등학교에 처음 도입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보완?개선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학습중심 현장실습' 제도를 분석한 결과,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 교육부는 학생들이 선택한 전공이 현장실습 전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실습 중도에 포기하고 복귀하는 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실습 도중 학교로 복귀한 학생 수는 2016년 11.5%에서 지난해 5.7%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부는 개선책으로 '현장실습 선도기업'을 현재 8000 개에서 2022년까지 3만 개 수준으로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현장실습 안전과 학생 인권 문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관련법 손질과, 학교-기업이 소통하는 구체적인 실행력 마련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직업계고에 전담노무사 지정 △학교마다 취업지원관 배치 △관련 법률 개정 △3학년 2학기를 '전환 학기제'로 운영 △학생 안전 및 권익보장 강화방안 구축안을 제시 했다. 특히, '신산업맞춤 학과개편'도 올해 100여개 이상에서 2022년까지 500여개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회도 현장실습 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나섰다. 7일 민주당 교육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안전한 현장실습 조건을 구축하기 위해 근거법령을 만들고 부처별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려고 한다"며 "부총리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간 대안과 실행력을 갖춰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 개선안에 대해 '2018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갔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학교현장 반응은 아직 미지근한 수준이다.

경기도 특성화고 교장은 "취업률이 핵심이 아니라, 고졸출신들이 평생직장으로 받아들이고 선호하는 직업교육과 사회적 분위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졸취업 관련 대국민 포럼이나 공청회를 열고 정부가 현장을 찾아 충분한 소통과 공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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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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