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플라스틱 없는 삶

밥상에 '초미세 합성섬유'가 오른다

2019-06-07 11:27:35 게재
윌 맥컬럼 지음 / 하인해 옮김 / 북하이브 / 1만4000원

#"빨리 좀 와 볼래? 이것 좀 봐봐." 그랜트 오크스가 나를 부른다. 나는 지금 그린피스의 탐사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호의 작은 식당에 앉아 있다. 생물보안 감독관인 오크스는 화물창에 있는 임시 실험실로 날 데려가 현미경을 보여준다. 그가 렌즈 밑에 있는 배양 접시를 돌리자 낯선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딱딱하고 가장자리가 우둘투둘한 진분홍색 물체는 한눈에 봐도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항해 중인 천연의 남극해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뒤따라 실험실로 온 동료 몇 명이 돌아가며 문제의 물체를 살펴본다.

다음 달 그린피스 연구소가 있는 엑서터대학교에 돌아가 분석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플라스틱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몇 주 후 나온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서식지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바다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역시나 두 개의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게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이크로비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환경운동가인 나에게도 생소했던 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은 미세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다양한 성분과 크기를 지닌다. 각종 세정제와 세제에 은밀히 첨가된 이 작은 플라스틱 조각은 사용 후 하수구를 통해 조용히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지만 제조업체에서는 마이크로비즈의 종착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 2013년 12월 한 연구에서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에 있는 오대호의 플라스틱 오염도가 밝혀졌는데, 오대호 중 가장 작은 온타리오호에는 1제곱킬로미터당 무려 110만개의 마이크로비즈가 있었다.

#랍스터는 어쩌다가 껍데기에 펩시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게 되었을까? 어느 누구도 상상 못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어부가 잡아 올린 포획물 가운데 한 랍스터의 등딱지에서 이상한 무늬가 발견됐다. 평소 펩시를 즐겨 마시던 한 선원이 파랑, 하양, 빨강으로 이루어진 마크를 알아보았다. 광고였을까? 펩시 마케팅팀이 도를 넘어 수중생물에게까지 브랜드를 새기기 시작한 게 아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어떻게 바다에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예일 뿐이었다. 펩시 문신 랍스터에 대해 전 세계 언론은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새로 나온 책 '플라스틱 없는 삶'의 본문 중 일부를 소개했다. 이 책은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며 플라스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소개한다. 이 책의 부제 '#플라스틱제로'는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해시태그 중 하나다.

암반에서 플라스틱 층 나와

얼마 전 지질학자들은 암반에서 플라스틱 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인류의 환경파괴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새로운 지질 시대에 대해 '인류세(人類世)'라고 일컫는데 인류세의 증거가 나온 셈이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을 지칭하는 비공식적인 지질 시대 개념을 뜻한다. 인류세를 대표하는 물질은 방사능 물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이다. 이런 물질 중에서 플라스틱은 지구에서 가장 외딴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인간과 접촉한 적 없는 해양생물의 배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런데도 플라스틱 생산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 중 어떤 곳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현실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옷 세탁할 때 나일론 빠져나가

최근엔 옷을 세탁할 때 빠져나가는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실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유행이 빨라지면서 저렴하고 다루기 쉬운 폴리에스테르는 전체 옷감 중 60%에 이른다.

UN의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제조된 합성섬유는 6100만톤에 이른다. 전 세계 바다에 유입되는 플라스틱 가운데 1/3 이상은 옷을 세탁하면서 나온 것이다. 길이가 1밀리미터도 안 되는 초미세 합성섬유(마이크로파이버)는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세탁기에서 빠져나와 배수구에 흘러들어간다.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파이버는 작은 새우처럼 생긴 크릴과 같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눈에는 맛있는 먹이로 보인다. 먹이사슬에서 맨 아래 단계에 해당하는 이런 동물은 더 큰 동물성 플랑크톤, 어류, 고래를 비롯한 바다 포유류처럼 수많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이 같은 경로로 마이크로파이버는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축적되다가 마침내 우리의 식탁에까지 오른다.

대용량 제품 구매하기

이 책은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는 법'을 실천하는 방안도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누군가에게는 쉬울 수 있는, 마이크로파이버에 관한 해결책은 옷을 덜 사고, 산다면 중고의류나 천연섬유로 만든 제품을 사는 것이다.

또 이 책은 플라스틱을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곳은 욕실이라고 밝힌다. 샴푸, 린스, 치약 등 대부분의 제품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대용량 제품을 구매해 내용물만 채워 플라스틱 용기를 재사용하는 것이다. 이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고체 제품을 사용하면 된다. 플라스틱이 아닌 재사용이 가능한 알루미늄 통이나 종이 박스로 포장한 고체 비누, 고체 샴푸, 가루 치약 등이 좀 더 친환경적이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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