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론·CLO에 잇딴 경고음

2019-07-18 11:37:01 게재

블룸버그통신·시킹알파

미국 시카고 외곽에 위치한 '클로버 테크놀로지'는 잉크젯 프린터 카트리지나 휴대폰을 재활용해 판매하는 평범한 업체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 회사 소식에 월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 5년 전 발행한 6억9300만달러 채권가치의 3분의 1이 하룻밤 새 사라졌다. 회사채를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경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 "클로버의 채권액은 월가 기준으로 새발의 피"라며 "하지만 클로버의 사례는 월가의 공포감을 던지기에 충분했다"고 전했다. 바로 레버리지론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의 불안함 때문이다. 이는 미국은 물론 일본과 한국의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경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1조3000억달러 레버리지론 시장은 수익을 찾아 미친듯 헤매는 투자자들과 느슨한 안전장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10여 년 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처럼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채무 재조정 전문 투자은행 'GLC 어드바이저스'의 소렌 레이너트슨은 "유동성이 말라가는 상황에서 매수자들이 동시에 출구로 몰려들 때 가격은 신속하고 맹렬하게 급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로버는 1996년 설립됐다. 2010년 사모펀드 '골든 게이트 캐피털'에 비공개 가격으로 인수됐다. 골든 게이트는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따랐다. 배당금을 짜내기 위해 해당 기업의 채권을 사들여 모았다.

골든 게이트는 레버리지론 시장을 지갑처럼 활용했다. 사들인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최소 2억7800만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2013년 1억달러, 2014년 1억7800만달러였다.


무디스 보고서에 따르면 클로버의 총수익은 주주들 배당, 기존 채권에 대한 차환, 그 과정의 수수료 등으로 쓰였다. 클로버는 2014년 은행에 추가적으로 1억달러 대출을 요청했다. 또 다른 기업의 인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클로버의 빚은 대개 뮤추얼펀드가 사들이거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에 구조화돼 편입됐다. CLO는 다양한 레버리지론을 묶어 높은 신용등급의 상품으로,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게 인기다.

최근 수년 동안 CLO를 사는 투자자들에게 별 다른 걱정거리는 없었다. 전 세계 전반적으로 신용등급 높은 채권 수익률이 제로에 가까운 터라 투자자들은 CLO가 제시하는 달콤한 수익에 열광했다. 점점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다. 투자보호 조항이 부족하다는 사실엔 눈을 감았다.

느슨한 재무약정

클로버의 채권은 '약식부채계약'(covenant-lite)으로 불린다. 대출자 권리 보호장치가 간소하다는 의미다. 커버넌트는 계약을 체결할 때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조항을 의미한다.

클로버는 매 분기 재무점검 이후 위험 사항을 투자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없었다. 이는 투자자들이 클로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지렛대를 거의 갖지 못했다는 의미다. 레버리지론 리서치 회사인 '커버넌트리뷰'의 제시카 라이스는 "보호조항이 약한 거래가 점차 늘어나게 되면 결국 모두가 죽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로버에 악성 이벤트가 생기면서 곧바로 투매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9일 클로버는 2곳의 핵심 거래처를 잃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문사에 의뢰했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자 클로버 채권 가격이 급속히 빠졌다. 97센트에서 65센트로 속락했다. 너나없이 모두가 내던지는 투매가격대에 진입한 것.

이틀 뒤 무디스는 클로버의 신용등급을 'Caa3'로 낮췄다. 등급을 매길 수 있는 것 중 최하위다. 무디스는 "회사 소유주인 사모펀드가 악성 자금조달 정책을 갖고 있는 데다 거대한 빚을 끌어다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불하고 기업을 인수한 이력 등을 고려해 그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하위 신용등급으로 하락하자 수많은 채권 보유자들이 투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하위 등급 채권 보유가 제한된 CLO와 뮤추얼펀드는 예외없이 클로버의 채권을 던졌다.

무디스는 클로버의 파산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GLC 어드바이저스'의 소렌 레이너트슨은 "빚을 많이 진 기업들의 투자자는 매출 하락에 굉장히 민감하다"며 "현금흐름이 하룻밤 새 증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LO 떠나는 최대 투자자

전 세계 CLO시장의 최대 고객은 일본 투자자들이다(내일신문 2월 20일 12면 'CLO 시장 지배하는 일본 농협은행' 참조). 자금은 넘치지만 제로금리 상황이라 자국 내에서 수익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고객이 CLO 시장을 이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S&P글로벌에 따르면 일본 농협은행은 지난해 1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발행한 CLO의 23%를 가져갔다. CLO 중에서도 최고등급만 사들였다. 거래 규모도 크다. 단일 CLO 거래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도 한다.

노린추킨은행의 CLO 보유량은 JP모간체이스와 웰스파고은행의 보유량을 합한 것과 맞먹는다. 때문에 CLO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 2018년 4/4분기에만 98억7000만달러 어치의 CLO를 사들였다.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에서 발행된 CLO의 1/3에 육박한다.

하지만 올해 3월 일본 유가증권법이 개정됐다. CLO 시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따라서 CLO를 판매하는 측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판매액의 최소 5%를 지급준비금을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이 생겼다. 그렇지 않은 CLO는 구매할 수 없게 됐다. 일본 농협은행도 CLO 투자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LO 최대 고객이 떠나면 남은 투자자나 CLO를 만들던 측에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CLO 시장에 상당한 규모로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다(하단 표 참조). 게다가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CLO 스프레드가 커지고 있다. 즉 CLO를 찾는 고객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제분석지 '시킹알파'는 17일 "CLO 시장은 최대 고객인 일본 금융기관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며 "미국의 주요 은행들도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시킹알파는 "CLO 시장이 감추고 있는 리스크는 실물경기와 주식시장의 미래에 심각한 우려를 던진다"며 "CLO 위협은 10여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재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도 15일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해외 CLO투자 현황'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에 주의를 촉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의 해외 CLO투자규모는 올 1월 40억달러(약 4조7100억원)로 집계됐다. 보험회사가 23억달러, 자산운용회사가 14억달러를 투자했다. 2013년 말 투자 규모가 10억달러였던 것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