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학, 직업교육 새 길을 찾다│② 원주캠퍼스

칸막이식 학과 운영 탈피, 융합형 인재 양성

2019-09-16 11:17:01 게재

통폐합 통해 지역산업 맞춤형 학과 재편 … 취업률 100%, 과정평가형 자격제도 눈길

#.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의료공학과 학생들은 졸업 작품으로 전동휠체어를 제작하기로 했다. 전공을 살려 휠체어 설계 도면과 기계 부품은 쉽게 제작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고민이 생겼다. 용접 등이 필요한 휠체어 기본 틀의 자체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을 들여 외부에 의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학생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렸다. 용접기술을 갖춘 산업설비과 학생들로부터 공동제작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번 기회에 기계부품을 외관에 부착하고 전기배선을 연결할 능력이 있는 전기제어과 학생에게도 공동 제작을 제안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가 의료공학 러닝팩토리(LF)를 개관했다. LF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제품 생산 전 공정을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지도록 장비를 배치한 통합 실습장이다. 기존 실습장과 가장 큰 차이는 전통적인 칸막이식 학과 운영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과 학생이 한 곳에서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 실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의료공학과 학생이 의수를 제작해 모터로 원격제어하기 위한 테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폴레텍대학 제공


◆의료기기 관련 기업에도 개방 = 원주캠퍼스 LF 중심에는 의료공학과가 있다. 의료공학과는 지역전략산업 맞춤형 인재양성을 위해 올해 하이테크과정을, 내년에는 춘천 캠퍼스 헬스케어전자과와 통합해 2년제 학위과정을 신설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학과 통폐합 등을 통한 융합교육을 강화한다는 폴리텍대학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원주캠퍼스 중심의 학과 개편은 강원도의 의료기기 산업이 원주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원도 내 의료기기 기업들은 매출 6612억원을 달성, 국내 의료기기 업계 전체 매출액 5조8231억원 중 11.4%를 차지했다. 수출 규모도 4억6100만달러에 달해 국내 의료기기 수출액 31억6000만달러의 14.6% 수준이다. 원주에는 건강보험공단 등 의료 관련 국책기관과 130여개 기업이 입주한 산업단지 등 의료기기 산업 클러스터가 구축되어 있다.

LF는 의료기기 관련 기업에도 개방된다. 실제 작업현장과 유사한 실습장을 개방해 기업 관계자들이 시제품 제작 테스트를 할 수 있다. 이러한 LF 운영을 통해 교수진은 물론 학생들이 기업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며 지역전략산업과 상생하는 지역특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조광래 원주캠퍼스 학장은 개관식에서 "원주의 주력산업인 의료기기 분야에서 개발, 시제품 테스트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과 러닝팩토리를 기반으로 협업시스템을 구축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산업설비과 학생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폴리텍대학 제공


그렇다고 원주캠퍼스가 뿌리산업 분야 인재 양성의 역할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설비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과는 로봇용접 등 각종 특수용접장비를 이용해 석유화학 플랜트, 발전설비 분야 등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산업설비학과가 주목받는 데는 플랜트용접 직종 과정평가형 자격 제도 도입으로 전문기술과정(1년 직업교육과정)임에도 용접산업기사를 배출한다는 점이다. 과정평가형 자격제도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를 기반으로 설계된 교육훈련과정을 체계적으로 이수한 교육생에게 내·외부 평가를 통해 국가기술자격증(산업기사)을 주는 제도다.

산업설비과는 체계적인 시험 준비 교육과정 운영은 물론 유관기업으로부터 실습재료를 원활하게 공급받음으로써 과정평가형 용접산업기사 시험 합격률을 높였다. 2016년도 도입 첫 해에 합격률은 81.2%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88%, 2018년에는 95.6%라는 우수한 합격률을 기록하며 전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취업률도 2016년 77.8%, 2017년 81.8%, 2018년 100.0%로 최고 수준이다. 김현진 산업설비과 교수는 "수료생을 채용했던 기업들이 과정평가형 자격과정과 수료생 현장적응력을 높이 평가해 다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과 교수들도 기업전담제를 통해 약 40개 기업을 집중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NCS기반 우수 직업교육훈련 경진대회' 대상 = 실제로 최 모(35)씨는 대학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한 뒤 대기업 계열 관련업체에서 10여년 동안 근무했다. 최씨는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지난해 3월 산업설비과에 입학했다. 그는 재학 중에 과정평가형 용접산업기사 등 5개 자격을 취득했으며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올해 철강기업에 취업했다. 최씨는 "철저히 실습과 평가로 이뤄지는 교육과정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장에 바로 적응해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엄 모씨(19)는 취업을 희망하는 인문계고 재학생이 폴리텍대학에서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일반계고 직업교육 위탁과정'을 통해 산업설비과에 입학한 경우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엄씨는 위탁과정을 통해 기술을 배우면 바로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폴리텍을 찾았다. 엄씨는 '과정평가형 자격' 제도를 통해 학력이나 경력 없이도 1년 만에 용접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했다. 용접분야 기능사 자격(용접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도 2개나 취득했다. 엄씨는 올해 2월 졸업과 함께 충남 아산 소재 정밀판금 제조 전문기업에 입사했다.

이런 노력은 외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산업설비과 플랜트용접직종은 지난 9일 고용노동부 주최, 한국산업인력공단 주관의 '2019년도 NCS기반 우수 직업교육훈련 경진대회'에서 과정평가형자격 분야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뿌리기술경기대회 용접분야에서 최우권 학생이 은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원주캠퍼스는 의료공학·산업설비과 외에도 에너지설비, 전기제어, 컴퓨터응용기계 등 5개 학과, 9개 직종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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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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