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기술독립 이번에 제대로│② 반도체 : 초격차 유지 기로에 섰다

전후방 생태계 구축해야 반도체 강국 지킨다

2019-09-18 11:47:04 게재

"경쟁력 갖추려면 세계적 수준 소재장비산업 만들어야" … 정부·대기업 역할 '주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반도체사업에서 영업이익 65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126조700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52%에 육박했다. 반도체 호황을 바탕으로 사상 최대 수익을 낸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부터 수요감소로 인해 실적은 급락했다.

이같은 실적 롤러코스터는 국내 반도체산업이 갖고 있는 약점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 규제를 계기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전경(왼쪽)과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 전경. 사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제공


◆메모리에 편중된 생태계 = 국내 반도체산업은 메모리에 편중된 생태계를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74.3% 수준이다. 그 다음으로 시스템반도체(13.1%) 광전자(5.2%) 반도체부분품(3.5%) 등이 있다. 반도체 수출비중도 메모리가 73.4%를 차지하며 절대적이다. 시스템반도체는 20.7%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세계 반도체시장 65%는 시스템반도체다. 메모리반도체가 디지털데이터를 저장하는 기능이 중심이라면 시스템반도체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IT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메모리 수요도 증가하지만 시스템반도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시스템반도체시장에서 국산제품 점유율은 3% 내외에 불과하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시대는 '기계의 지능화'를 전제로 한다. 인공지능은 초지능화 구현을 위한 고성능 저전력 고집적 반도체와 머신러닝에 필요한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를 가져올 전망이다.


◆소재장비 해외 의존도 높아 = 국내 반도체산업 최대 약점은 세계최고 수준 완성품 제조능력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소재장비 기술력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측정한 국내 반도체 국산화율은 소재 50% 내외, 장비 20% 내외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생산차질 우려와 국내 반도체산업이 위기라는 진단이 제기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


실제 고사양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불산)와 노광장비 등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불산은 일본 스텔라 모리타가 독점 생산하고 있고, 노광장비의 경우에는 네델란드 ASML과 일본 니콘 캐논이 주도하고 있다.

불산은 일본의 도발 이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쳐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완전 대체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높은 소재·장비 해외의존도는 최근 몇 년간의 반도체 슈퍼호황에도 국내산업 전체로는 성장을 이루지 못한 원인이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몇 년간 연속해서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국내 소재·장비기업들은 영업실적 개선폭이 크지 않았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잔치 혜택은 일부 대기업계열 부품장비업체에 그쳤다"며 "대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이 전체 생태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는 국내 반도체산업 약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와 연구개발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고 전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고르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소재장비산업을 반도체 제조와 같이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업계 고위 임원은 "일본이 국내 기업들에 반도체 경쟁력을 따라잡히면서도 세계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참고해야 한다"며 "일본은 세계 반도체시장을 주도하던 1980∼1990년대 당시 정부와 업계가 함께 소재·부품을 육성했고, 지금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품은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만큼 1등 제품이 아니면 절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며 "결국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글로벌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데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며 "정부가 나서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테스트베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도 "이번 사태는 완성품 제조에서 일본을 따라잡기 급급해 소재나 장비 분야까지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정부와 대기업의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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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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