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시장 유동성 위기, 10년 전 태동"

2019-09-23 11:51:20 게재

블룸버그 "양적완화 재개가 해법일 수도"

지난주 미국 환매조건부(레포) 채권 금리가 10%까지 치솟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평상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범위에 있던 레포금리가 급등하면서 연준은 신속히 유동성을 주입해 상황 진화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 "레포시장 유동성이 급감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며 "미국 금융시스템에 근본적인 약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며 이는 1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문제점"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확실한 개선책이 없다면 갑작스런 유동성 위기는 또 발생해 더 심각한 시장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포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GLMX'의 CEO 글렌 하블리첵은 "레포시장의 유동성 흐름이 이제는 원활치 않다"고 말했다.

레포시장은 중요하다. 글로벌 자본시장을 원활하게 돌리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레포시장에서 미국채 등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린다. 기한이 끝나면 채무자는 담보를 재매입하고 빌린 돈을 갚는다. 레포거래는 보통 하루 단위 초단기로 이뤄진다.

보통 헤지펀드들이 높은 수익을 내는 자산을 매입할 때 레포시장을 활용해 돈을 빌린다. 또 재무부로부터 미국채를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프라이머리딜러(국고채 전문딜러) 은행도 레포시장을 활용한다.

레포 거래 참가자들은 유동성 부족 현상에 두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문별한 모험 투자를 규제하기 위한 금융규제법이다. 이들은 "기술적 요소라기보다 연준과 금융규제 등의 요소가 지난주 레포금리 급등의 배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첫 번째 요소는 연준의 양적완화(QE) 프로그램 종료와 관련이 깊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에 유동성을 주입하기 위해 수조달러어치 채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미 경제가 좋아지자 연준은 2017년 10월부터 사들인 자산을 매각하며 시장의 유동성을 줄이기 시작했다. 연준은 그러다 미중 무역전쟁 등의 여파를 고려해 지난달 자산축소를 종료했다.

문제는 자산을 줄이면 재무상태표 반대편에 있는 부채도 함께 줄어든다는 점이다. 부채에는 유통중인 달러가 포함된다. 유통화폐는 경제 규모와 함께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은행이 연준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지준금)도 부채다. 지준금은 계속 줄어들었다.

물론 연준의 부채가 줄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 레포시장의 유동성 부족을 일으키기엔 충분치 않다. 은행들을 모두 합하면 여전히 1조달러 넘는 지준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이나 바젤III 등과 같은 은행 규제안은 은행들에게 보다 엄격한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은행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지준금을 떼어둬야 한다. 따라서 은행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유자금에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은행들이 레포시장에 참여해 얻는 수익도 줄어들게 만들었다.

JP모간 CEO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주 레포시장의 요동을 언급하며 "은행들은 막대한 양의 현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유동성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막대한 양의 제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금감면 등으로 역대급 재정적자를 내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투자자와 딜러들은 국채 매입 등으로 정부 운용에 돈을 댄다. 이 돈은 금융시스템에서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재무부 국채 경매에 참여하는 국고채 전문딜러들은 점차 레포시장의 '대주'(lender)에서 '차주'(borrower)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정부가 추가로 발행하는 국채를 어떻게든 흡수해야 하기 위해서다. JP모간에 따르면 올해 미 정부의 순 국채 발행액은 대략 1조2000억달러다. 지난해엔 1조3000억달러였다. 반면 2017년엔 그 절반에 못 미쳤다.

물론 지난주 레포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데는 악재가 겹친 측면도 있다. 기업들의 법인세 납부 기한에다 재무부의 미국채 대량 경매, 분기말이 다가오면서 금융회사들이 자본충당액을 맞추기 위해 레포시장에서 급전을 빌리려는 3가지 상황이 겹치면서다. 때문에 레포시장 1일 금리가 10%까지 치솟으며 연준의 금리통제 능력이 한시적으로 허물어졌다.

연준은 과거 여러차례 자산 축소가 시장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일축했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도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은행 규제가 레포시장 충격의 원인'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연준은 한시적인 개선책을 택했다. 뉴욕연방은행은 지난주 금요일 향후 3주 동안 레포시장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해 하루 단위 또는 주간 단위로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앞서 뉴욕연은은 10여년 동안 중단했던 레포시장 개입을 4일 연속 시행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나 시장전략가 등은 연준의 조치로는 충분치 않다고 우려한다. JP모간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클 레롤리는 "은행 지준금이 더 이상 풍부하지 않다"며 "연준이 제대로 된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지난주 레포시장에서의 사건이 종종 재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TD시큐리티의 금리전략대표인 프리야 미스라는 "확실한 해결책은 연준이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것"이라며 "지난주 벌어진 일들로 많은 고객들이 양적완화의 재개를 해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객들은 벌써부터 연준이 얼마나 사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연방은행 총재인 에릭 로젠그렌은 연준이 3가지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유동성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연준이 개입하는 방안, 또 하나는 상시적 레포시장 개입 기구를 두고 매일매일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 마지막으로 연준 자산을 영구적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이다. 로젠그렌 총재는 본인이 선호하는 방안은 연준 자산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GMLX의 하블리첵은 "뉴욕연방은행이 지난주 초 레포시장을 안정시키려다 문턱에서 좌절한 것을 보면 연준 자산을 다시 늘리는 게 보다 쉬운 방법일 수 있다"며 "연준이 오랫동안 레포 개입에 손을 놓고 있어 감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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