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학, 직업교육 새 길을 찾다│⑤ 춘천캠퍼스

교육과정 재구성으로 첨단분야 인재 양성

2019-10-07 11:33:15 게재

전기과에 신재생에너지 접목 … 러닝팩토리 개장으로 학과·산학 간 협력 강화

#1. 1997년부터 2009년까지 한 중소기업 이사로 재직했던 정 모씨(57)는 퇴직 후 별다른 기술이 없어 일용직으로 전전했다. 결장암으로 투병하던 아내와 사별하면서 잠시 부정적인 생각으로 살던 그는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알게 된 폴리텍에 입학했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기술을 배울 수 있단 점이 좋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안정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전문기술과정에는 비슷한 연배의 동기들이 있어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그는 유사 경력을 인정받아 3번의 도전 끝에 전기기능장을 따고 전기공사 업체에 취업해 현장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씨는 전기관련 직종에 취업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동기들과 모임을 결성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 대학 졸업 후 7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김 모씨(40)는 35살 늦은 나이에 춘천캠퍼스 전기과에 입학했다. 자격증 취득하고 전기설계 회사에 취업했다. 그는 졸업 후에도 후배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 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 전기기사와 소방설비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김씨는 38세에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으로 발전소에 취업했다.


최근 한국폴리텍대학 춘천캠퍼스가 제품 생산 전 공정을 통합적으로 운영 가능한 러닝팩토리형 실습장 'INNO Factory'의 문을 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제품 생산 전 공정을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지도록 장비를 배치한 것이다. 즉 '과제 선정 → 디자인(설계) → 가공(제작) → 시험(계측) → 피드백 → 수정(재가공) → 활용(적용)'의 프로세스형 모듈 수업이 가능해졌다.

한국폴리텍대학 춘천캠퍼스 전기과 학생들이 러닝팩토리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기존 실습장과 가장 큰 차이는 전통적인 칸막이식 학과 운영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과 학생이 한 곳에서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 실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진출 분야 확대될 것 = INNO Factory의 중심에는 전기과가 있다. 전기과는 2년제 학위과정과 1년 직업훈련과정(전문기술과정) 그리고 전문대 이상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테크 과정으로 구성됐다.

앞서 춘천캠퍼스는 전기과 교육과정에 신재생에너지를 접목해 정부가 육성하는 미래성장동력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첨단학과로 재탄생시켰다. 변화에는 풍력발전소 효율성이 높아 국가와 자치단체가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지역 특성이 반영됐다.

실제로 정부는 세계적인 신재생에너지 개발·공급 추세에 맞춰 그 비중을 2030년까지 11%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2040년 30∼35%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만큼 인력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원도의 경우도 보급률 15.5%를 목표로 그린에너지 산업 중점 육성, 민ㆍ외자 유치를 통한 발전단지 조성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관령풍력단지, 국산풍력발전단지 등 풍력발전단지와 동해화력, 춘천 붕어섬, 영월 등의 태양광 발전단지가 지역에 설치됐다.

윤덕경 전기과 교수는 "산업현장에서는 전기과 출신들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업무는 극히 제한적이고 기계, 전자, 미디어, 디자인 전공자들과 융합해야 완제품이 만들어진다"면서 "INNO Factory는 학과 간 개념을 없애서 이 공간에서 제품의 설계, 제작, 완성, 완성품의 시험까지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공간에서 이뤄지는 융복합교육이 학생들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과정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자격증이 있어야 일할 수 있는 전기 분야 특성에 융복합 교육까지 이뤄지면 보다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주기술교육센터에서 재직근로자가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동문 아버지가 아들도 입학 권유하기도 = 실습장은 지역 기업들에게도 개방된다. 실제 작업현장과 유사한 실습장을 개방해 기업 관계자들이 시제품 제작과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공간활용으로 교수진은 물론 학생들이 기업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며 지역전략산업과 상생하는 지역특화 대학의 역할을 강화하게 된다. 또 실습장을 활용해 인근 중·고교와 대학 학생들의 창의재량활동(자율학기제, 동아리)도 지원할 계획이다. 춘천캠퍼스는 실습장 개방을 위해 스마트토이 제작 업체 등 15개 기업과 강원테크노파크, 강원정보문화진흥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상권 한국폴리텍Ⅲ대학장은 "신제품 개발, 시제품 테스트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기업들과 러닝팩토리를 기반으로 협업시스템을 구축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이런 협업은 결국 학생들의 취업으로 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전기과는 최소 85% 이상의 취업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다양한 학생들을 캠퍼스로 불러들이고 있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출신인 함기주(22)씨는 고교 재학 중에 전기기능사와 승강기 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는 태양광회사에 지원해 최종합격한 경험도 있다. 좀 더 수준 높은 기술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춘천캠퍼스 전기과를 선택한 함씨는 초기에 수학에 대한 낮은 이해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교수들의 지도를 바탕으로 노력한 결과 지금은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전기산업기사, 소방설비산업기사를 이미 취득했고 전산응용기계제도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한 상태다. 졸업 후에는 전기설계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함씨는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일과시간 이후에 교수들이 직접 특강을 해주고 실습실을 개방해 늦은 시간까지 도와준 덕분이다"면서 "취업의 경우도 학교에서 준비한 취업설명회, 멘토 멘티제 등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4년제 국립대에 진학했던 조남선(22)씨는 일종의 '유턴 입학생'이다. 대학에 진학한 그에게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조씨에게 전기공사 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폴리텍 진학을 권유했다. 그의 아버지도 30년 전 폴리텍 전신인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한 동문이다. 조씨는 "졸업하고 전기공사 분야로 진출할 계획"이라며 "단순히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 때문에 적성과 관계없이 일반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는 기술교육을 통해 좋아하는 분야로 진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직업교육도 = 이런 변화 속에서도 춘천캠퍼스는 직업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맞춤형 직업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본연의 역할도 잊지 않고 있다. 춘천캠퍼스가 운영하는 남양주 기술교육센터는 직업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열악한 지역 중소기업 재직노동자의 직무능력 향상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또 중장년세대 및 청년, 경력단절여성의 취업과 창업을 위한 양성교육도 실시한다. 교육과정은 산업설비(에너지설비, 공조냉동, 아크 및 특수용접), 전기(설비시공, 시퀀스제어, PLC제어) 분야, 사물인터넷 SW실무 등이다. 모든 교육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진행한다. 특히 남양주 기술교육센터는 남양주시가 제공한 공간에서 교육이 이뤄지는 협업 프로그램이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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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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