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일에너지, 전성기 지나 쇠퇴기?

2019-11-12 11:35:40 게재

전략경제학자 윌리엄 엥달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제9회 셰일석유컨퍼런스'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년 간 셰일석유와 가스업계의 눈부신 성장을 언급하며 "셰일에너지가 미국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에너지 강대국으로 만들었다"고 역설했다.

트럼프의 말처럼 셰일에너지 성과는 찬란했다. 미국은 2011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제1의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올라선 데 이어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제1의 석유생산국으로 등극했다. 이는 모두 셰일석유와 가스 덕분에 벌어진 미국의 경사였다. 하지만 그 성공이 지속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미국의 전략경제학자 윌리엄 엥달이 지적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제9회 셰일석유컨퍼런스'에서 축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AP=연합뉴스


미국은 셰일에너지의 등장으로 중동이나 베네수엘라를 넘어 전 세계 정치 어젠다에 지정학적 지렛대를 갖게 됐다. 러시아가 제1의 가스 공급국인 유럽에서도 미국의 힘은 마찬가지로 커졌다.

의기양양한 트럼프 대통령이 피츠버그에서 연설한 것처럼, 러시아의 알렉산더 노박 에너지장관은 최근 미국의 셰일 핵심지역에서 석유생산량 증대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가까운 미래 미국 셰일석유 생산이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노박 장관의 말처럼 몇달 전부터 미국 셰일석유 채굴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미 월가 역시 2020년 셰일석유 증대량이 크게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가로부터의 자금 지원도 말라가고 있다.

트럼프에 한방 먹인 EU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국들에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 셰일가스를 구매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넣었다. '공급 다변화가 수입국에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상황 변화는 크지 않다.

미국은 러시아~발트해~독일에 가스관을 설치하는 '노드스트림2' 프로젝트에 강력 반대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노드스트림1보다 유럽에 보내는 가스 규모를 2배 늘렸고, 러시아와 마찰을 빚는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우회한다. 이 사업의 중심 사업국인 독일은 미국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미국의 마지막 희망은 덴마크였다. 하지만 덴마크 역시 최근 러시아 사업자 가즈프롬이 덴마크 영해를 거쳐 사업할 수 있도록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가즈프롬은 내년 초부터 기존보다 2배 많은 가스를 EU로 보낼 수 있게 됐다.

덴마크의 결정은 러시아 가스를 미국 셰일가스로 대체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지정학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EU위원회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불러 "EU가 미국 LNG의 대규모 구매자가 돼달라"고 강권했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 가스를 봉쇄하는 데 실패하면서 상당 부분 좌절됐다.

노르웨이로 눈길 주는 폴란드

한 가지 위안은 폴란드가 미국 셰일 LPG를 수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폴란드는 러시아 가스 이외의 공급처를 찾고 있었다. 폴란드는 2018년 미국 셰일가스기업과 공급계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폴란드는 노르웨이 가스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폴란드 국영가스기업은 최근 "2022년부터 100억큐빅미터 계획용량을 가진 발트해 가스관을 통해 노르웨이 콘티넨탈 쉘프에서 우리가 직접 뽑아올린 천연가스(250만큐빅미터)를 수입할 것"이라며 "나머지 필요한 천연가스는 노르웨이 시장에서 사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미국산 셰일가스 LPG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이 LNG를 수출하기 위해선 인프라 추가 건설이 긴급하다. 가스를 액화처리하는 것은 물론 선박에 적재하는 데 필요한 항구시설과 탱커가 필요하다. 여기에 최근 미국 가스 도매가가 낮아졌다. 반면 인프라 투자 비용은 높아졌다. 결국 주요 수출시설의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미국의 가스가격은 25년래 가장 낮은 상황이다. 올해 가스 생산량은 전년 대비 10% 많아졌다.

미국 2위의 가스 생산업체인 체서피크 에너지는 투자를 크게 줄이고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상환하려 하고 있다. 체서피크는 2008년 거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헤인즈빌 유전을 발견한 기업이다. 한때 노다지로 불렸던 루이지애나주 북쪽 가스전과 텍사스 동쪽 가스전에서의 생산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가스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체서피크는 연준이 제로금리로 낮춘 2010년 이후 많은 돈을 빌렸다. 지렛대를 한껏 높여 셰일가스 붐을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제 가스는 공급 과잉이고 연준 기준금리는 다소 올랐다. 체서피크를 비롯한 가스 생산업체들은 거대한 빚과 하락하는 가격에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호주, 카타르 등으로 가스 수입을 다변화하고 있다. 또 미국 관세에 보복하기 위해 중국은 미국 LNG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 가스산업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미국 셰일석유 감소?

미국의 셰일석유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셰일석유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 월가 투자기업들이 전 세계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두려움에 셰일석유 리스크를 줄이면서다.

미국 셰일석유 생산량은 지난 10여년 동안 세상을 놀래켰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미국 원유 생산량은 2018년 하루 1096만배럴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중 약 650만배럴의 원유가 셰일 광구에서 나왔다. 대부분 페르미안분지의 웨스트텍사스 지역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생산량 증대량이 크게 둔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셰일석유업계가 죽음의 나선형에 휘말렸다'고 보기도 한다.

2018년 말이 성장률의 정점이었다. 당시는 미국 셰일석유는 연간 180만배럴씩 하루 생산량이 늘었다. 에너지정보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올 4분기엔 생산 증대량이 그 절반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2017~18년 생산이 급격 확대됐다. 하지만 셰일광구의 경우 개발 초기 많은 양의 셰일석유를 뽑아올릴 수 있지만, 그 이후 생산량이 급감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 중반에 머무르면서 대부분의 중소규모 셰일기업들은 손실을 보며 석유를 뽑아올리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셰일석유 업체의 파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 셰일석유 기업의 주먹구구 추산이다. 지난 수년 동안 셰일석유 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이는 기업이 확보한 셰일석유 매장량이 계속 늘고 있다는 추산에 기반한다. 하지만 그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 증권거래소는 2008년부터 석유기업들이 자체적인 방법으로 매장량을 추산해 보고토록 허용했다. 하지만 구체적 추산 방법에 대한 공개 의무는 없다. 셰일석유 생산량이 늘어나는 한, 그리고 월가의 자본이 지속 유입되는 한 누구도 셰일기업의 매장량 추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상황이 변하고 있다.

최근 페르미안분지의 최대 기업 중 한 곳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CEO 스캇 셰필드는 "셰일석유를 생산하는 양질의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이른바 '스위트 스폿'으로, 추출비용이 낮아 수익성이 큰 곳이다. 2년 전만 해도 셰필드는 "페르미안분지 셰일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과 맞먹는다"고 장담했던 인물이다.

윌리엄 엥달에 따르면 향후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 셰일석유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 이에 따라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자본조달이 쉽고 저렴하며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조건에서 셰일석유의 전성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국제유가가 하락했다. 지난해 10월 서부텍사유 가격은 배럴당 75달러를 넘었다. 현재는 56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이는 대부분의 셰일석유 기업에게 손익분기점이다. 게다가 셰일기업들의 주먹구구 추산을 믿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자력생존이 가능한 몇몇 대기업을 빼고는 전부 생사 갈림길에 섰다는 지적이다.

S&P글로벌플랫은 "셰일 잠재력이 업계 전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엥달은 "투자가 감소하면서 미국 셰일석유가 급격히 감소할 전망"이라며 "그에 따른 지정학적 결과는 미국 외교정책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는 트럼프의 재선가도에도 좋지 않은 뉴스"라며 "몇년 전 국제유가 침체로 고통 받을 때 셰일사업자들은 각종 장비를 묵혀 두고 잠깐 사업을 보류했던 것에 비해 요즘엔 상당수 사업자가 값비싼 장비를 부품별로 해체해 팔거나 아예 고철로 헐값 매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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