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금리 지속에 유럽 보험사가 위험하다"

2019-11-15 10:59:14 게재

뉴욕타임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의 최고리스크책임자(CRO)인 톰 윌슨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의 마이너스 국채 발행을 거론했다. 그리스는 지난달 초 4억8750만유로(약 6394억원) 규모의 3개월 만기 국채를 연 -0.02% 수익률로 발행했다. 국채 경매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상전벽해의 상황이었다. 몇년 전만 해도 그리스가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은 일률적으로 50%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윌슨은 NYT에 "난 보수적이지만, 기이하게만 느껴진다"며 "마이너스금리라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이너스금리 국채는 지난 수년간 불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17조달러를 넘는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과 금융당국, 전직 중앙은행장들은 유럽의 보험사들이 마이너스금리 채권 때문에 도산의 위험이 가장 큰 시장참가자로 전락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전통적으로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투자자들이다. 하지만 상당수 보험사들이 수익을 찾아 다니면서 위험한 자산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브라이언 콜튼은 "수십억달러를 관리하는 보험사들이 보다 위험한 투자를 감행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수익을 찾아 헤맨다는 건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한다. 수요를 창출하고 부동산이나 낮은 등급 회사채, 위험한 투자자산 등의 가격을 올린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거품을 만든다. 잠재적으로 금융위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유럽은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금리 채권이 가장 만연한 지역이다.

보험업계에 미치는 파장 때문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유럽 금융당국은 금리가 갑자기 오를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테스트했다. 조사 결과 유럽 42개 대형 보험사 가운데 6곳이 법적 자본금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산업 규제당국인 '유럽보험·연금청' 최고리스크전문가인 디미트리스 자페이리스는 "보험사들이 점진적인 금리 인상은 관리 가능할 것"이라며 "하지만 금리가 급격히 오른다면, 금융안정성에 미치는 충격에 큰 의구심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보통 보험사들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 수익을 추구한다. 고객의 보험청구가 있을 경우에 대비해 안전하게 돈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보험사들은 독일이나 스위스 등 신용에 관한 한 최고 등급인 나라의 국채를 대거 사들인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안전하다는 국채의 수익률이 크게 줄었다. 급기야 마이너스금리로 내려갔다. 보험사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투자적격등급 제일 아래에 위치한 BBB 등급 회사채 같은 위험자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유럽 보험사의 총자산은 11조유로(약 12조1000억달러) 정도다.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을 집중 사들이는 데 우려하고 있다. 이는 신용도 낮은 기업들의 대출채권을 묶어 또 다른 채권으로 만든 상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모기지 관련 복합금융상품과 유사하다.

유럽금융감독기구들은 올해 8월 26일 합동보고서를 내고 "은행과 연기금, 보험사들이 CLO의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금융감독기관장들의 모임인 금융안정위원회(FSB)도 걱정이 태산이다. FSB는 지난달 13일 CLO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리스크에 대해 정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안정적 투자로 불리는 채권 중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보험사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제로금리, 마이너스금리는 우연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고의로 유도한 상황이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만성적인 성장정체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ECB는 금리를 낮추기 위해 공개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한다. ECB는 시중은행들의 대출을 독려하기 위해 중앙은행에 예금 형태로 맡겨 놓은 돈에 마이너스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즉 이자를 내주는 게 아니라 돈 보관료를 받겠다는 의미다.

ECB의 이같은 부양책에 점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유럽 각국의 전직 중앙은행장들은 지난달 ECB에 탄원서를 내 "제로금리, 마이너스금리가 금융권 전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수익을 찾아 헤매면서 위험자산 가격이 오르고, 이는 결국 갑작스런 시장조정 나아가 깊은 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마이너스금리를 지속할지 여부는 이달 1일 취임한 ECB 신임 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최대 고민이다.

전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마이너스금리는 매우 긍정적인 경험이었다"며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실업률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경제 상황 개선은 저금리의 부작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주장했다.

윌슨은 알리안츠에서 회사 자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알리안츠의 총자산은 9740억유로(약 1조1000억달러)다. 이 가운데 7290억달러를 금융시장에 투자했다. 알리안츠는 '핌코'와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투자자산 1조6000억유로도 관리한다. 그는 "알리안츠는 CLO를 멀리해 투자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정크등급 바로 윗 등급 회사채 1500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BBB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자 수요는 폭발적이다. 투자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경제침체가 깊어지거나 기타 시장의 충격이 오면 신용평가사들이 BBB 등급 채권을 대거 투기등급으로 하향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이는 시장의 패닉을 몰고 올 수 있다. 보험사나 기타 기관투자자들은 투기등급 채권 보유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채권 등급 하락이 가시화되면 보험사들은 시장에 관련 사채를 투매할 수밖에 없다.

윌슨은 "알리안츠는 투자다각화로 회사채 신용 강등에도 버틸 수 있다"며 "채권시장에서 보험사 비중이 크지만 향후 금융위기의 뇌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험사들은 은행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 보험사에 위험이 닥쳐도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보험사들은 은행과 달리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에 의존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서로 믿지 못할 때 시장 유동성은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다.

하지만 다른 시장참가자들은 보험사의 형편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보험사의 위기가 채권 시장에 격동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은행으로 확산돼 더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것. 뮌헨기술대학 교수인 크리스토프 카세레는 "일부 보험사는 은행만큼 시스템적 리스크를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도 금리가 계속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면 '위험 투자를 해서라도 수익을 내야 한다'는 보험사의 내부 압박감은 더 커질 전망이다. 보험사들이 수년 전 사들인 플러스 수익률의 채권은 계속 만기가 돌아온다. 비슷한 수익률의 투자상품을 찾아 재투자해야 하지만 찾아보기가 힘들다.

보험 리스크 전문가 자페이리스는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면, 재투자 리스크는 더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럽 보험사 전체적으로는 건강하다"며 "하지만 언제나 낙오자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회사명은 밝히지 않았다.

마이너스금리 때문에 파산한 거대 보험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독일 보험업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알리안츠는 여전히 수익을 낸다. 현재 주가도 12개월래 최고치에 근접했다. 알리안츠의 지분상품을 투자한 사람들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금융 시스템에 충격이 닥쳐 국채와 회사채가 갑자기 가치를 잃게 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이다. 윌슨은 "나도 그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전쟁, 중동에서의 정정 불안, 유럽 등에서 포퓰리즘 확산 등을 거론하며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금융위기 방아쇠를 당길 가능성이 여러 부문에서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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