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진료거부 법안만 심의 … 수술실CCTV 설치는 뒷전

2019-11-27 18:03:12 게재

의료사고피해자·환자단체

국회가 의사들의 진료거부권 관련법안만 심의하고 환자안전에 필요한 수술실CCTV 설치법안은 심의하지 않는다며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들이 이를 비난했다.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 법안 심의를 한창인 가운데 보건복지위원회(이하,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원는 성범죄 의료인·무자격자 대리수술 의료인·특정강력범죄 의료인 등의 면허 규제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집중 심의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지난 3월 11일 자유한국당 김명연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제15조제1항에서 규정한 ‘의사의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의사의 진료거부권’으로 변질시키는 의료법 제15조의2 개정안이 이번 상임위 법안소위 심의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이 사안에 대해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작년(2018년) 11월 7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임시회관 앞에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환자를 선별하는 진료거부권 도입과 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요구하는 대한의사협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까지 개최하며 강도 높게 반대했었다.

이는 의사에게 환자를 선택할 권리로써 전면적인 진료거부권을 인정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고, 국민과 환자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요청에 응답한 김명연 의원에게 유감까지 표명한 법안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무자격자 대리수술, 유령수술, 수술실에서의 성폭행·성추행·생일파티·인증사진 촬영·집도의사 무단이탈·의료사고 조직적 은폐 등의 범죄행위와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수술실 CCTV 설치·운영 논의가 화두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술실에서의 환자 안전과 인권 침해 상황은 심각하고 의사면허의 권위를 추락시켜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을 가중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작년(2018년) 11월 22일부터 올해 4월 18일까지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과 수술실 안전·인권 보호를 위해 수술실에 CCTV를 설치·운영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발의해 달라며 국회 앞에서 100일 동안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국회의원이 올해 5월 14일 수술실 CCTV 설치·운영과 촬영한 영상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그러나 공동 발의자 10명 중 5명이 하루 만에 철회해 법안이 폐기되는 수난을 당했다. 안규백 국회의원이 법안 폐기 6일 만에 공동발의자 15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대표 발의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6년 9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전원 했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한 (故)권대희 군 어머니는 수술실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통해 은폐될 뻔한 의료사고의 진실과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밝혀냈다.

고 권대희 군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억울하고 불행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료사고 피해자·환자단체와 함께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운동’(일명, 권대희법)을 전개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유일하게 의사만 요구하는 의료인 진료거부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 환자단체 등은 “상임위 법안소위가 자유한국당 김명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인의 진료거부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한다면 당연히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술실 CCTV 설치·운영 관련 의료법 개정안도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인의 진료거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조문체계상으로도 의료법 제15조제1항에서는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지 않고,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의료법 제15조제1항에 대해 입법자는 의료인에게 “법률상 권리로써 진료거부권”을 준 것이 아니라 “법률상 의무로써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이에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단체는 “의료인의 진료거부 금지의무”를 규정한 의료법 제15조제1항을 “의료인의 진료거부권”으로 변질시키려는 의료법 제15조의2 개정안에 반대했다.

그동안 정부는 응급실 안전대책과 진료실 안전대책을 마련해 이미 발표했다. 국회는 응급실 안전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10개 이상, 진료실 안전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20개 이상 발의해 이미 국회를 최종 통과했거나 현재 심의중이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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