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3법' 국회 법사위 심사 없이 처리하나

'가명 조치·처리' 용어도 다른데 논의조차 없어

2019-12-10 10:52:04 게재

법률체계 심사필요하지만 찬반양론 매몰

개인정보 문제, 정치적 타협으로 넘어가

국회가 소위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으로 불리는 데이터3법의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없이 처리한다.

여야는 9일 원내 대표단 회동에서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고 그동안 논란이 됐던 데이터3법도 10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데이터3법 개정안의 핵심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정보를 개인의 동의없이 빅데이터 분석·이용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데이터3법은 '개인정보 도둑법'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개인정보 도둑법 강행하는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건강정보 등 국민의 사적이고 민감한 정보까지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정부의 데이터3법 강행 중단과 개인정보 보호체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하지만 가명정보도 추가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의 재식별화가 가능한만큼 시민단체 등에서는 법안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에서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해당 법안들을 법안심사소위로 보내 심도 있게 논의하자"며 법안처리에 반대했지만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법안 처리를 막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데이터3법 개정은 타법과 달리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가 3개 법안에 산재·중복돼 있는 만큼 규제를 정리하고 일원화해야 한다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국회의 각 소관 상임위가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규제 일원화를 위한 작업을 병행하지 못했다. 정부 부처 간의 의견조율도 제대로 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률의 체계와 자구를 조정하는 일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데이터3법은 법사위에서 필수적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할 사안이다.

문제는 데이터3법 개정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가명정보'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난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가명처리'라고 정의하고 있는 반면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가명조치'라는 개념을 적시하고 있다. 기본적인 용어 통일조차 안돼 있는 것이다.

채 의원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데이터3법 중 먼저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는 의료정보를 규제하고 있는 의료법과의 충돌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과 건강보험공단 등이 진료정보와 환자의 건강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명정보를 통해 개인의 동의없이 제공될 가능성이 있다. 진영 행정안전부장관은 "의료는 여기에 해당이 안된다고 결론을 내면 개인정보보호법을 통과시켜도 의료에 관한 데이터는 오히려 전혀 활용을 못한다"며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 의원은 "법률상 명확한 해석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며 "이 부분에 대해 더 신중해야 하는데 (국회가) 날짜에 쫓겨서 … "라고 말했다.

소관부처를 일원화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업무를 이관한 반면 신용정보법은 금융위원회가 권한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정보 관련 감독 기관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부분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신용정보법개정안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개인신용정보를 처리하는 익명조치'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지정하는 데이터전문기관의 적정성 평가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한편 데이터3법의 개정을 놓고 9일 금융권과 시민단체는 거세게 대립했다. 금융권 9개 기관·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데이터3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신용정보협회·신용정보원·금융보안원·핀테크산업협회는 "데이터3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미래 핵심산업인 인공지능(AI), 플랫폼 산업에서의 국제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진다"며 "당장 유럽연합(EU) 수출기업들은 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으로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날 참여연대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7개 시민사회단체는 "데이터3법은 기업이 개인정보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고 팔 수 있게 만드는 개악"이라며 "공공의 이익도 아닌 기업의 이윤을 위해 건강정보와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침해될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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