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남매 경영다툼' … 지금이 집안싸움할 땐가

2019-12-26 10:42:01 게재

일본승객 감소·미중무역 갈등 등 항공업계 앞날 불투명 … 국민 “기업 살리기 집중해야” 비난

“집안문제는 조용히 해결짓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새로운 대한항공으로 거듭 나십시요.”

대한항공 경영권을 둘러싼 한진가 ‘남매싸움’에 대해 비난이 일고 있다. 안팎으로 어려운 경영환경 아래 서로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볼썽사나운 경영권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갈등이 길어질 경우 조원태 회장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노동조합은 24일 “조현아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조 전 부사장이 23일 조원태 회장을 비난하며 경영복귀 의지를 밝힌데 대해 노조가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과연 대한항공 2만 노동자를 위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최근 글로벌 항공산업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있는 시점에서 회사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으로 규정했다. 2014년 소위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을 나락으로 추락시킨데다, 밀수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라는 점을 되새기며 자숙하라는 의미다.

노조는 “자숙과 반성의 시간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며 “모든 수단.방법을 통해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 반대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도 따갑다. 대부분 싸움을 건 조 전 부사장을 비난하는 분위기다. 아이디 ‘kdg0****’는 “선친께서 피나는 노력으로 대한항공 국적항공사를 만들어 놓았는데 형제자매가 재산싸움하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전 부사장 경영복귀 원해? = 한진 남매싸움은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터진 것이어서 더욱 눈총받고 있다.

현재 항공업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엄혹하다. 한.일 무역갈등에 따른 일본승객 감소,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항공시장 위축 등으로 대한항공도 직격탄을 맞았다. 최대 성수기인 3분기 964억원 흑자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지난해보다 76% 줄었다.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도 1383억원으로 78% 감소했다.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2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1조1208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6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자금과 물량을 앞세운 중국 및 중동 국가들의 파상공세로 현 상태 유지도 버거운 실정이다.

싸움은 조 전 부사장이 시작했다.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선친인 고 조양호 전 회장 뜻과 다르게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전 부사장은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낸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에서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를 놓고 재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조 전 부사장 경영복귀가 무산된데 따른 불만표출이라는 해석이 많다.

현재 한진그룹 경영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말 이뤄진 정기 임원인사에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땅콩회항 사건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3남매 중 가장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3년 만에 '칼호텔 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여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물컵갑질' 사건으로 다시 물러나야 했다. 이후 1년 7개월간 '무직' 상태다. 반면, 조 전무는 사건 14개월 만에 한진칼 전무로 복귀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 전 부사장이 경영복귀를 희망했지만 조 회장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불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 복귀는 커녕 측근들마저 대거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사로 밀렸다. 기내식기판사업본부에서 ‘조현아 라인'이 물러나고 대신 조 회장 측근이 요직에 앉았다. 이 사업은 조 전 부사장이 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애착을 갖고 깊이 관여해 온 분야다.

조 회장이 호텔업을 정비하려고 해 반발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호텔분야는 조 전 부사장 전공업무다. 조 전 부사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1999년 대한항공 첫 근무분야도 호텔면세사업본부였고, 2009년 계열사 첫 대표이사직도 칼호텔네트워크였다.

그러나 칼호텔네트워크는 2015년 이후 적자행진이다.

대한항공 호텔사업본부도 비슷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 회장이 정비하려 하자 조 전 부사장이 발끈했다는 분석이다.

조 회장은 11월 말 가진 뉴욕 기자간담회에서 “이익이 나지 않으면 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호텔사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승창 항공대 교수는 “한진계열 호텔업은 지속적으로 경영실적이 안 좋았다”며 “항공업계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전체 경영을 맡고 있는 조 회장으로서는 호텔업에 대해 고민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부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조 회장, 조 전무와 달리 아무 직책이 없는 조 전 부사장은 상속세 낼 현금을 마련하기가 만만치 않다.

현재 삼남매와 고 조양호 전 회장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는 27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배우자 1.5, 자녀 1’ 비율로 상속받았다. 단순계산으로 조 전 부사장이 내야할 상속세가 600억원에 이른다.

◆조 회장 경영권 흔들릴 수도 = 그러나 조 전 부사장측 주장은 다르다. 조 회장의 뉴욕 기자간담회가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고 조양호 전 회장이 이메일로 조 회장에게 대한항공 경영을 맡겼다"는 거짓말에 발끈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선친이) 지난해 12월 제게 이메일을 보내 앞으로 대한항공은 제가, 나머지 계열사는 대표이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본인이 경영권을 갖는 게 조양호 전 회장의 유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측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한번도 고 조 전 회장을 만난 적도, 병문안 간 적도 없다.

또 조 전 회장은 병세악화로 메일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뉴욕간담회에서 조 회장은 “선친이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앞으로 나한테 결재 올리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하되, 누나·동생·어머니와 협조해 결정해 나가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진측은 “경영권을 맡겼다는 표현이 아니고, 부재중 업무전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자칫 남매싸움이 길어질 경우 조 회장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입장문에서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진칼의 우호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회장은 내년 3월 말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만약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부결되면 경영권을 잃게 된다. 내년 3월 주총이 주목받는 이유다.

현재 대한항공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 전무 6.47%, 이 전 이사장 5.31%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17.29%), 한진그룹 '백기사'인 델타항공(10.0%), 우호지분으로 알려진 대호건설(6.28%), 국민연금(4.11%) 등이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남매간 표대결이 펼쳐지면 주요 주주간 ‘합종연횡’이 예상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경영권 바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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