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남발하는 트럼프, 달러패권 위상 허문다

2020-01-20 11:02:49 게재

이코노미스트지 "달러 여전히 강력하지만 경쟁국·동맹국 모두 다른 선택지 모색중"

미국의 통화인 달러는 1950년대부터 세계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굳혔다. 달러 덕분에 전 세계 유일 금융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다른 나라의 경제적 운명을 좌지우지할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그같은 힘을 일상적이고 전면적으로 활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들어서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러 나라와 금융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상이 된 나라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는 결국 미국 금융패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촉발하고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를 통해 분석했다.

미국 재무부는 2018년 러시아 알루미늄 생산 기업인 '루살'에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세계 2위 업체인 루살은 달러 기반 금융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었다. 치명적이었다. 하룻밤 새 모든 거래처와 단절됐다. 루살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30개 이상의 금융제재, 무역제재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이달 10일(현지시간) 미 재무장관 스티븐 므누신은 "이란 정권과 관련한 수십억달러 자금을 봉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미군 철수를 요구한 이라크 정부에 "뉴욕연방준비은행에 개설된 이라크 정부 계좌를 봉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실화한다면, 이라크의 석유매출대금은 묶이게 된다. 이라크의 유동성은 고갈되고 경제는 크게 약화된다.

미국은 외교정책 측면에서 금융전쟁을 무기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지위에 있다. 달러는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 가치척도, 가치보장, 교환수단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경 간 무역거래의 절반이 달러로 이뤄진다. 이는 미국이 전 세계 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5배, 수출시장 비중의 3배다. 동시에 달러는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시장이 선호하는 화폐다. 글로벌 채권 발행, 외환보유고 달러 비중은 전체 2/3에 육박한다.

전 세계의 금융시장 주파수는 미국에 맞춰져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움직이거나 월가의 리스크 판단이 달라질 때, 글로벌 시장은 크게 들썩인다. 세계 금융 배관 역시 미국이 좌우한다. 국제 금융거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 뉴욕에 소재한 미국의 환거래은행들을 통해 달러로 결제된다. 미국은 '국제 은행 간 통신 협회'(SWIFT)를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은행 상호간 지급·송금업무 데이터 통신을 장악하고 있다. 스위프트의 하루 평균 거래는 3000만건이 넘는다.

미국 중심 네트워크의 또 다른 한 축은 'CHIPS'다. 뉴욕어음교환소가 운영하는 민간결제 시스템으로, 주로 국제결제 및 외환거래와 관련된 결제 서비스를 취급한다. 하루 취급 규모가 평균 1조5000억달러다. 미국은 이런 시스템을 활용해 전 세계 금융거래를 손바닥 보듯 속속 파악한다. 이런 인프라에 접근을 거부당하면, 해당 기업이나 조직은 즉시 고립된다. 결국 재정적으로 무너진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전 세계 개인과 기관은 미국의 금융 관할권에 놓여 있다"며 "제재를 당하면 존폐 기로에 선다"고 전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본격적으로 금융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금세탁을 하거나 제재를 무시하는 외국계 은행들에게 막대한 벌금을 매겼다.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 은행은 미 정부로부터 90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프랑스 정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패권 무기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이란과 북한, 러시아, 터키, 베네수엘라 등의 경제를 목조르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의 무기는 관세, 기업에 대한 법률적 공격 등이 있다. 중국 화웨이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가와 거래하는 타국의 기업을 겨냥한다. 미국이 2018년 이란과의 핵합의를 탈퇴한 이후, 유럽연합(EU)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럽 기업들은 재빨리 이란을 떠났다. 미국은 2018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다시 단행하면서 '이란 은행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자 스위프트는 미국의 요구를 따랐다.

달러패권을 활용해 미국 법과 정책의 범위를 확장시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신조에 딱 들어맞는다. 다른 나라들은 이를 부당한 '권력 남용'으로 본다. 우선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과 각을 세우는 나라들이 적극적이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달러를 '정치적 무기'라 부른다. 동맹국도 이에 동참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상거래 질서를 보증하는 미국의 역할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강력한 달러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미국의 금융패권이 종말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를 배제한 국제통화 실험의 새 시대는 △자산의 탈달러화 △지역 통화와 스와프 거래를 사용한 무역 우회 △은행 간 새로운 결제 메커니즘 △디지털 통화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양국 무역에서 각국의 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란과 말레이시아, 터키, 카타르 정상들은 최근 정상회담에서 암호화폐나 각국 화폐, 금, 물물교환 등의 방법을 쓰자고 제안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국방안전보장연구소'(RUSI)의 톰 키팅은 "기존 금융 질서에 변곡점이 오고 있다"며 "미국의 금융패권에 불만을 가진 나라들이 반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가 최선두다. 임시 기관을 지정해 미국이 불량하다며 배제한 나라들과 상거래하는 데 활용한다. 자국의 주요 은행과 기업들이 제재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국영 프롬스비야즈방크는 무기 거래에 쓰인다. 더 크고 중요한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VTB를 제재 위험에서 방어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금융시스템 탈달러화에 바쁘다. 2013년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을 40%에서 24%로 줄였다. 2018년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의 미국채 보유액은 1000억달러에서 100억달러 이하로 줄었다. 러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1250억달러 규모 국부펀드에서 달러 비중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달러를 버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달러가 러시아를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인 엘비라 나비울리나는 최근 "탈달러 움직임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촉발됐다"며 "동시에 환율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우리는 점차 여러 개의 기축통화가 있는 국제통화 시스템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비울리나 총재의 말은 영국 중앙은행 총재 마크 카니의 입장과 비슷하다. 카니 총재는 지난해 8월 "달러 중심 금융시스템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러시아의 국채 발행 역시 달러를 탈피하고 있다. 신규 국채는 주로 루블화나 유로화로 발행된다. 러시아 정부는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도 모색중이다. 러시아 기업들은 2014년 이후 외국통화 표시 채권 발행을 약 2600억달러 정도 줄였다. 그중 달러 표시 채권발행은 2000억달러 감소했다. 반대로 금융자산 측면에선 여전히 달러가 인기다. 기업과 가계가 보유한 달러자산은 2014년 대비 800억달러 늘었다. ING 은행 이코노미스트 드미트리 돌긴은 "이런 상황은 다소 상반돼 보이지만, 달러자산 금리가 유로화보다 높다는 점이 반영된 것 같다"며 "이는 경제제재로 인한 리스크를 능가하는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달러패권, 권력 남용 변질

ING는 2019년 러시아 상품·서비스 수출의 62%가 달러 결제인 것으로 추산했다. 2013년 80%에서 하락했다. 당시 중국과의 교역은 전액 달러 결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절반이 안된다. 러시아-인도 교역엔 미국의 제재에 취약한 국방 분야가 많다. 2013년 달러 결제에서 현재는 루블화 결제로 바뀌었다. 러시아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의 한 이유는 교역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달러 결제의 경우 각국의 중개 은행은 해당 거래가 미국의 제재 사안에 해당하는지 치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 과정은 몇달 동안 진행될 수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달러 탈피를 추진하는 곳은 에너지와 원자재 기업들이다. 달러는 석유 거래의 글로벌 벤치마크다. 따라서 달러의 그물망에서 벗어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한 CEO는 "유가 거래의 핵심은 리스크 관리인데, 이를 위해선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이 시장에선 모두 달러로 결제된다"며 "원유 거래기업이나 구매기업 또는 생산기업으로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싶다면 달러 시스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러시아 원유 생산의 40%를 담당하는 국영 석유기업 로즈네프트는 입찰계약을 유로화로 하고 있다. 또 다른 석유기업 수르구트네프테가스는 여전히 달러로 거래한다. 하지만 계약서에 '요청이 있을 경우 유로화로 결제한다'는 추가조항을 달고 있다. 한 거래기업은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분탕질을 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생산기업 가스프롬은 서유럽 국가에 가스를 수출하면서 처음으로 루블화로 거래했다. 글로벌 원유 거래 기업의 한 CEO는 "달러에서 루블화로 전환하는 비용은 적절했다"며 "재무팀에 인력을 추가했고 환율 리스크를 조금 더 부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개척한 길을 중국이 뒤따를지가 관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중심 금융시스템에서 중국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화웨이 같은 중국 기술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발목을 잡았다. 그같은 미국의 능력은 결국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상대방을 벌주는 데서 나온다. 달러 기반 금융, 결제 시스템을 활용해서다. 화웨이 고위 간부에 대한 미국의 법적 소송은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두고 아시아 중심 사업을 벌이는 은행 HSBC 덕분에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HSBC에 감독자를 앉혀놓았다. 이 감독자가 화웨이 관련 정보를 미국측에 전달했다는 것.

지난해 10월 미국은 8곳의 중국 기술기업을 제재했다. 혐의는 신장 지역에서 인권유린을 저질렀다는 것.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사업하는 중국 기업이 뉴욕에서 상장하는 것을 막겠다거나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 기업 주식을 사지 못하도록 제한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달러체제를 우회하겠다는 중국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위안화를 특별인출권에 편입시켰다. 사실상 기축통화로서 승인받은 것. 중국은 35개국 이상의 외국 중앙은행들과 통화 스와프 거래를 맺었다. 당시 2020년이면 세계 최고 기축통화를 노리고 달러에 도전하겠다는 다소 성급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2015년 중국 증시 패닉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서둘러 자본통제에 나섰지만 섣부른 조치였다는 평가다.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시장 비중은 수년 동안 2% 대에 머물러 있다. 위안화 국제화를 밀어붙인 인물인 중국 인민은행 전 총재 저우샤오촨은 "달러에 도전하기엔 아직 섣부르다"고 인정한 바 있다.

미국이 금융화력 위세와 새로운 제재 기술을 보여주면서 중국의 셈법이 다시 바뀌고 있다. 중국은 자율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방화벽을 쌓고 있다. 중국은 자국만의 결제청산 인프라를 구축했다. 바로 2015년 출범한 'CIPS'다. 현재는 스위프트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규모는 여전히 미미하다. 2018년 연간 거래 규모가 스위프트 하루 거래량보다 적었다. 하지만 은행 간 국제 거래에 많은 연결점을 제공하면서 위안화 거래를 보다 단순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스위프트의 대안 체제를 공동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주도 달러반대 흐름, 중국도 동참하나

전 세계 소비자금융 시스템 일부는 중국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되고 있다. 전통 은행들보다 더 빠르게 글로벌화한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 덕분이다. 알리바바와 그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을 통한 결제는 전 세계 56개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알리페이 로고는 일부 국가에서 비자만큼 일반명사가 됐다. 자본시장과 관련, 중국은 2018년 상하이거래소에서 위안화 원유선물을 출시했다. 이른바 석유위안(petro yuan)인데, 일각에선 달러의 유가 표시 독점에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상장한 자국의 주요 기업들에게 홍콩과 상하이 상장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중국 시총 최고의 기업인 알리바바가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는 홍콩 상장을 통해 134억달러를 모았다. 상장은 홍콩달러로 이뤄졌다. 알리바바 CEO 대니얼 장은 "홍콩증시가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변화한 결과"라며 "5년 전 우리가 안타깝게 놓쳤던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새로운 디지털화폐를 실험중이다. 아직 세부내역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통해 지급결제를 위한 국제시스템을 건설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미국에 대한 기선제압 측면도 있다.

중국은 최근 브릭스 정상회에서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회원국과 공통의 암호화폐를 만들자는 논의를 이끌기도 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익명, 분산화를 특징으로 하는 비트코인류를 약간 변형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익명 특성 대신 모든 데이터를 추적해 중앙에 저장하는 식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국인 중국이 달러패권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건 놀랍지 않은 일"이라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미국의 동맹국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19~2024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를 이끄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임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유럽 에너지 거래에서 달러를 쓰는 건 '비정상'(aberration)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이 전체 수요의 2%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 EC의 한 간부에 따르면 위원회는 결제, 무역과 관련해 달러에 부당하게 의존하는 일을 막기 위해 새로운 실행계획을 준비중이다.

현재까지 EU의 주요 탈달러 동력은 이란과 직접 관련돼 있다. 유럽은 은행과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고 이란과 교역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런 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청산결제소인 '인스텍스'(Instex)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제한적이고 엉성하다는 평가다. 인스텍스는 사실상 물물거래 시스템으로, 원유 거래를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한다. 원유 거래는 인도주의적 목적에 한정된다. 스위프트는 유럽 기업들이 달러나 스위프트에 의존하지 않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를 두려워하는 기업들은 외면하고 있다.

인스텍스의 지지부진한 실적은 역으로 달러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보여준다. 미국 로펌 '깁슨 던'의 경제제재 전문가인 애덤 M. 스미스는 "어떤 거래가 미국과 약간의 연결고리만 있어도 미국은 자국의 관할권을 주장한다"며 "달러를 쓰지 않아도 그렇다. 미국 관할의 은행을 이용하거나 외국 거래상대방이 미국 국적자의 거래 승인이나 촉진, 과정 등에 관계된다면, 또는 한 당사자가 미국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는 최종 결제 내역이나 회계 시스템, 이메일 등을 사용할 때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유럽의 일부 관료들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지난해 11월 29일 6개국 이상의 EU 회원국들이 인스텍스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의 한 관료는 "10년 또는 20년이 걸릴 사안이다. 또 이란만 관계되는 게 아니다. 수십년 시행된 정책을 단 1년 안에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럽이 유로화 내부 작업 개혁에 성공한다면, 유럽의 금융 영향력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또 다른 프랑스 관료는 "유럽은 금융결합, 재정통합, 자본시장 통합 등의 프로젝트를 먼저 성사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주요국들은 글로벌 디지털화폐를 만들려는 유럽중앙은행의 노력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영국 중앙은행 마크 카니 총재는 중앙은행들이 참여하는 디지털화폐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국제교역대금을 결제하자는 것.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미국은 여기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없는 금융시스템 구상

기축통화에 대한 진정한 시험대는 금융위기다. 코넬대 교수이자 '달러트랩' 저자 에스와르 S. 프라사드는 "위기 때 달러의 위력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역설적이게도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의 위상은 강화됐다. 미국의 자본시장처럼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교역 통화를 선택할 때 핵심 요소다.

하지만 하버드대 제프리 프랑켈 교수는 "금융 초강대국 지위는 경제적 영향력과 재위기간, 합법성이 복합적으로 합쳐진 것"이라며 "미국이 달러패권을 전쟁에서 활용하는 것은 달러의 위상을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전직 미 재무장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2016년 당시 미 재무장관 제이콥 루는 워싱턴의 한 강연회에서 "미국 경제제재의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경제제재로 기업 환경이 너무 복잡해지거나 예측불가능해지면 또는 제재가 과도해 전 세계 자금흐름을 방해한다면, 금융 거래는 미국 밖으로 아예 이전되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미국 금융시스템의 중심적 역할이 전 세계에서 위협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이고 공세적으로 경제제재 카드를 꺼내들면, 달러를 우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더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라며 "금융의 독창성은 미국만 독점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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