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공학 대신 금융공학' … 보잉의 패착

2020-01-22 11:44:57 게재

석달 전 95억 이어 100억달러 차입 추진

사고 전 6년 동안 434달러 자사주매입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보잉사 주가가 장중 5%대 폭락하면서 한때 거래가 중단됐다. 보잉 737맥스 사태가 1년 이상의 장기화 수순으로 접어들면서다. 두차례 추락 참사로 3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잉 737맥스 기종은 지난해 3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운항이 중단됐다.

위기에 빠진 보잉사는 은행 컨소시엄을 통해 최소 100억달러 차입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난해 10월 95억달러를 차입한 데 이어 석달 만이다. 737맥스 사태로 촉발된 현금흐름 악몽을 어떻게든 버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라인 금융전문 매체 '울프스트리트'는 21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보잉이 2013년 6월 이래 434억달러를 들여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했다는 것"이라며 "항공공학 대신에 금융공학을 선택한 보잉사의 패착이 현재 사태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보잉사가 돈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낡은 디자인을 어설프게 적용하는 대신 새로운 비행기를 개발·설계하는 본업에 충실했더라면, 자사주 434억달러를 매입해 소각하는 대신 품질 향상에 투자했더라면, 치명적 항공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돈을 구하러 금융권을 뛰어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잉은 두 번째 사고가 난 이후인 지난해 2분기부터 자사주 매입을 중단했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보잉도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매입해 그보다 더 주가를 높이려 했다. 보잉은 주가가 35달러대로 급락했던 2009년 1분기 자사주 매입을 중단했다. 그러다 주가가 100달러대로 오른 2013년 2분기 자사주 매입을 재개했다.

보잉사는 이미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 보잉사 총부채는 1360억달러로, 총자산 1320억달러를 약 40억달러 넘어선다. 순자본이 마이너스라는 의미다. 자사주 매입이 자본 방화벽을 허물었다는 의미다. 자사주 매입이 재무상태에 끼치는 일반적인 악영향이다.

또 재무제표에 등재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다른 곳에서 빌린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00억달러를 신규 차입할 경우 이런 상황은 더 악화될 전망이다.

보잉사는 이미 생산한 400여대를 고객사에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도 멈췄다. 보잉사에 납품하던 공급업자들은 이제 본격적인 직원 해고를 시작했다. 보잉사는 항공사를 주문한 고객사들과도 인도 지연에 따른 손해보상 합의를 해야 한다. 두 차례 사고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과도 합의 또는 소송을 벌여야 한다. 전 세계 항공규제당국에 조치에 대처하는 비용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보잉사의 다른 기종도 판매 감소를 겪고 있다. 항공공학보다 금융공학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보잉사는 제 무덤을 팠다.

보잉사는 씨티은행이 주도하는 은행 컨소시엄과 신규 차입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은행들은 현재까지 60억달러 규모까지는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은 2년 만기로, 추후 차입 잔고를 활용할 수 있는 '지연 인출'(delayed-draw) 방식이다. 나머지 40억달러를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은행들과 협의중이다. 보잉사에게 주어진 시한은 이번주까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3일 보잉사 신용등급을 낮추기 위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잉사에겐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다양한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사업운영 리스크, 금융 리스크가 높아질 시기가 온다"고 전망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보잉사 고객들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 항공금융 컨퍼런스에서 항공기 리스기업 '에어리스'의 CEO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는 보잉사에 "비행기 이름에서 '맥스'라는 말을 떼어달라"고 요청했다. 에어리스는 737맥스 기종 150대를 주문한 상태다. 그는 "맥스라는 이름은 역사책에 최악의 항공기 대명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맥스 브랜드는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또 다른 항공기 리스 회사 '에어캡'의 CEO 앵거스 캘리는 동료 기업 대표들에게 "지나치게 낮은 비용으로 비행기를 리스하거나 염가에 팔아치우지 말자"고 촉구했다. 에어캡은 737맥스 100대를 주문한 상태다. 그는 "절제력,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는 게 절실하다"며 "패닉에 빠져 비행기를 염가에 팔거나 리스할 때 남아 있는 자산가격을 회복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비행기의 가치도 급락하면 항공기 리스업체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며 "비행기를 처분하는 일과 관련해 절대적인 절제력을 발휘하자"고 촉구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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