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위기, 무너지는 사립대학 ④

교육계 "국가도 고등교육 재정부담 주체"

2020-02-17 11:39:35 게재

높은 대학 진학률, 평생교육 확대로 보편교육화 … 미국·일본 등도 사립대 지원

높은 진학률과 평생교육 확대로 상당부분 국민으로서 일반적으로 갖춰야 할 기초적인 지식과 교양을 배우는 보편교육화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기본법 사립학교법 대학설립·운영규정 등 고등교육 관련법에는 학생·학부모와 대학·법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고등교육 재정 부담 주체로 규정돼 있다는 지적이다.

2019년 발간된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한 학생 수는 40만218명(70.4%)이다. 진학률은 2017년(68.9%) 이후 2년째 상승세를 보이며 다시 70%대에 접어들었다. 1991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에 가파르게 상승해 2000년에는 70.5%로 처음 70%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2020년도 등록금심의위원회 대응을 위한 등록금 문제 공동대응 특별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가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이후 줄곧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70~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이 엘리트양성 중심의 특수교육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한 보편교육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캐나나 스페인 노르웨이 영국 등에서도 최근 고등교육 이수율이 증가하고 있다. 다른 OECD 국가들에서도 2000년대 들어 대학진학률이 상승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구조 재편이 예상되면서 비숙련 일자리는 상당부분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국가들도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마다 고등교육 예산을 높이고 있다.

◆사립대학 비중 80% = 우리나라 고등교육환경은 선진국들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사립대학 비중이 80%에 육박한다. 결국 고등교육 재원(R&D 예산 제외) 대부분을 학생과 학부모가 부담하는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실제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GDP 대비 정부부담 공교육비 비율(고등교육)'은 2016년 기준 0.7%에 불과하다. OECD 가입국 평균인 0.9%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실제로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 고등교육 재정투자가 적다. GDP 대비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OECD 평균이 정부 0.9% 민간 0.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부가 0.7%, 민간이 1.1%를 부담했다. 학생 학부모가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을 받는데도 대학은 재정난에 봉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는 "더 이상 등록금 인상으로 사립대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통해 등록금 중심인 우리나라 고등교육재정의 근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총장들 역시 가장 효율적인 재정 규모 확대 방안으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꼽았다.

하지만 정부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법적 근거를 만들어 추진하려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선진국 대부분 국공립대 중심 시스템 = 대다수 OECD 국가들은 국공립대가 고등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초·중·고교처럼 대학교육도 사실상 무상인 나라도 있다.

미국의 경우 다른 OECD 국가 대비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은 편이나 여전히 주립대가 전체 대학생 정원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주립대는 등록금을 받기는 하나 재정의 상당부분을 주정부 지원으로 충당한다.

미국 사립대학(비영리사립대학 기준)은 수입 구조가 비교적 다원화돼 있다. 미국 국립교육통계센터(NCES) 자료에 따르면 사립대학 수입(2016년 기준)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등록금이지만 그 비율이 39.5% 수준이다. 그 다음으로 민간지원금(기부금)이 15.7%로 높고 병원 수익이 13.2%로 그 뒤를 이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교부금는 14.0%를 차지했다. 특히 교부금은 학비 형태로 대학에 보조되는 것이라 용처가 정해지지 않았다.

또 미국 사립대의 등록금 결정권은 전적으로 대학 운영진에게 있다. 등록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낮추거나 없애는 것 역시 이사회를 비롯한 대학 운영진이 결정한다.

◆일본, 사립대에 경상비 지원 = 우리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지닌 곳은 일본으로 우리처럼 높은 수준의 사립대학 비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정부의 적극적인 등록금 통제가 없고 사립대를 포함한 전체 대학이 '정부 지원형 대학'으로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일본 사립대학은 우리나라 대학 만큼이나 등록금 의존율이 높다. 일본 사립대학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2017년 기준)은 47.2%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7.9% 수준이다.

다만 일본 정부는 매년 증가하는 사립대학 경상적 비용 보조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경상비 보조금은 일본 '사립학교진흥조성법'에 의거한 사학조성제도에 의해 중앙정부와 도도부현이 사립대학에 경상비를 보조하는 제도다. 교직원급여, 기반적 교육·연구경비 등에 해당하는 일반보조금액과 특색 있는 교육·연구 활동 지원을 위한 특별보조금으로 구분된다.

전체 사립대학 경상비 보조금 현황은 2017년 기준 정부는 총 경상비 보조금을 3153억엔을 지원했다. 현재 공개된 2015년 결산 기준으로 보면 사립대학 경상경비는 3조1580억엔이었고 일본 정부는 경상비 보조금으로 특별보조금 포함 3594억엔을 지원했다. 이는 전체 사립대학 경상비의 약 9.9%다.

◆대학 투명성·공공성 확보 중요 = 반면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은 운영비 대부분을 등록금이나 기타 자체 수입으로 충당해 왔다. 국내 사립대학 수입에서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다. 하지만 교육부 고등교육 예산의 40% 가량이 국가장학금인데다 나머지 예산 대부분도 각종 사업비 명목으로 지급돼 용처가 사전에 정해져 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 대부분에 사용 용도를 제한하는 '꼬리표'가 붙어있어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면서 "이런 제한을 풀면 등록금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부분에 투입할 수 있어 대학 운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다양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국민 신뢰를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철 서강대 교수는 관련논문에서 "사립대 중심의 현 고등교육 체제 하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민간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 않다"면서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의 운영 상 투명성과 사회적 공공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세금의 적극적 투입이 정당화되기 힘든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등록금을 동결한 상태에서 이에 상응한 재정투입을 제도화하려면 사립대학 운영의 거버넌스를 선진화하고 횡령 등 사학비리를 원천 차단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학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지난해 8∼9월 만 19∼74세 전국 성인 남녀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대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55.4%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대학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진로 탐색 및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량을 함양시켜줘야 한다(38.0%)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4년제 대학교수들이 해야 할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41.8%)는 응답이 잘하고 있다(8.1%)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전문대도 마찬가지였으나 잘못하고 있다(35.1%)는 응답과 잘하고 있다(14.3%)는 응답의 차이가 4년제보다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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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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