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미성년자 성착취 막을 3대 입법 시급

“다음 국회로 넘어가면 1년 더 걸려 … 20대 국회가 처리해야”

2020-04-21 10:51:50 게재

성매매 유인당한 아동청소년을 범죄자 취급하는 ‘독소조항’ … 법무부 ‘대상아동’ 삭제 동의, 개정안 통과 청신호

법안 통과는 첫 단추일 뿐, 사회 전반 인식 달라져야 … 실효성 있는 피해자 지원, 신고시 접근성.비밀 보장 필요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3대 입법이 시급하다. △온라인 그루밍의 형사범죄화 △의제강간 연령의 상향 △피해자를 처벌하는 대상아동·청소년 조항 폐지가 그것이다. 위 3가지는 여성·청소년단체가 수년동안 줄기차게 입법을 촉구했음에도 실현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21대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성매매에 유인당한 아동청소년에게 ‘자발성’을 따져 범죄자 취급을 하는 현행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의 개정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3년 이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아청법 상 ‘대상아동.청소년’ 개념을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지만 번번이 법무부 반대라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가 아청법 개정안에 긍정적 의견을 밝히면서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시민사회에선 다음 국회로 넘어갈 경우에는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만큼 20대 국회가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아청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공대위에는 십대여성인권센터, 세이브더칠드런, 탁틴내일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37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사진 탁틴내일 제공

 


◆피해아동 ‘낙인’ 찍는 아청법 = 현 아청법은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자(대상아동청소년)로 나눈다. 대상아동청소년은 자발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고 보고 성 구매자와 함께 처벌받는다. 용어만 ‘보호처분’이라는 표현을 쓸 뿐이다. 결국 범죄자가 되어버린 아동들은 처벌이 무서워 신고를 꺼리게 되고, 성구매 가해자들은 이런 상황을 악용해 아동들을 협박하고 범죄를 지속한다.

해외 주요국에서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이 발견되면 그 배경에 빈곤 등의 아동학대상황이 있다고 보고 즉시 해당 아동을 보호체계에 편입시키는 것과는 대조된다. 영국은 만 18세 미만의 아동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는 해당 아동에 대한 성 착취, 즉 아동 학대로 보고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한다. 성매매에 연루된 아동은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로 인식해 아동보호체계에 편입시켜 지역 차원에서 유관기관과 협력해 아동을 보호하고 피해를 지원하며,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아동청소년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온 수많은 시민단체들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거래하는 행위 자체가 성착취라는 사실을 알리고, 유인된 아동들에게 피해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선 아청법 상 제2조, 제38조, 제39조, 제49조의 ‘대상아동청소년’ 규정과 대상아동청소년 수사, 소년부 송치, 보호처분 조항의 삭제가 필요하다.

19대 국회 때부터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법무부였다. 19대 국회에서 남인순 의원 대표발의로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법무부는 △성매매 아동·청소년을 모두 일률적으로 피해자로 보기는 어렵다 △보호처분은 대상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필요 최소한의 조치로 현행법은 검사가 재범가능성 등을 검토하여 보호처분이 상당한 경우 사건을 소년부에 송치하고, 소년부 송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교육과정이나 상담과정을 마치도록 할 수도 있는 등 사건별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현행의 보호처분 제도가 과하다고 보기 어렵다 △보호처분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아동·청소년 성매매에 대한 대응방법이 제한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20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인순 의원, 김삼화 의원, 김상희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안 법안에 대해 법무부는 19대 국회 때와 거의 비슷한 의견을 내며 발목을 잡았다.


◆n번방 사건 터지고 나서야 입장 바꾼 법무부 = 법무부의 입장 변화에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공론화 탓이 컸다. ‘n번방’ ‘박사방’ 등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인당한 아동청소년들의 성착취물이 유포되고, 대화방 운영자들은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한 데다 수많은 공범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성착취에 공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법무부는 뒤늦게 성범죄 관련 법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아청법의 대상아동청소년 규정 삭제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진전된 의견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20일 “조만간 정부부처들이 합동으로 대책을 발표할 텐데 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법무부의 진전된 의견도 이 때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법무부 의견이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될 경우 관련 절차를 밟아나갈 예정이다.

아청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법안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도읍 의원측은 20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법무부의 변화된 입장은 언론을 통해서 봤지만 공식적으로 제출받은 것은 없다”면서 “해당 법안은 관련 부처들의 이견으로 소위에서 논의되지 못하던 법안인데 (법무부의 변화로) 이견이 해소됐다면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373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 공동대책위원회의 조진경 공동대표(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다음 국회로 넘어가면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1년은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면서 “20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식개선이 중요한 과제 = 20대 국회의 마지막 과제가 되든, 21대 국회의 첫 과제가 되든 아청법에서 대상아동 규정 삭제는 첫 단추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매니저는 “성매매에 유인된 아동청소년의 피해자 지위를 인정하게 되면 피해자들의 신고도 있겠지만, 우리들이 나서서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어떻게 이 아이들을 발견할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이미 그 전부터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는 어떻게 할지, 나이가 좀 있는 아이라면 자립과 재활은 어떻게 할지 등등을 고려한 지원체계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고과정이나 절차에서 접근성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고 매니저는 “2차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고 싶지 않을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비밀이 보장되어야 피해자들이 믿고 신고를 할 수 있고 지원을 받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고 매니저는 “학교는 물론이고 전사회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법령에서 대상아동 규정이 빠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에게서 뭔가 빌미를 찾는 식의 인식이 지속되면 피해 입은 아이들은 과연 자신이 피해자로 보일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진경 대표는 “그동안에는 성매매에 유인된 아동청소년에게도 뭔가 책임이 있는 양 책임을 묻고 벌을 내렸는데, 만약 대상아동 규정이 삭제되면 이들에게 피해자 지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면서 “교사도, 경찰도, 모든 사람들의 인식도 싹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이 다음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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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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