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더불어시민당 권인숙 당선인(비례)
"성평등을 젠더갈등으로 보지 말아야"
최저임금·저출산 다룰 때 여성고용과 함께 판단해야
1호 법안으로 '온라인그루밍 처벌법' 발의 예정
"'성평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하는 포지셔닝을 잘 잡아야 한다."
지난 4일 내일신문에서 만난 더불어시민당 권인숙 당선인(사진·비례대표)은 "21대 국회에서 할 일들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성평등에 대한 위치 규정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버리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n번방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 당선인은 저출산, 최저임금 등 주요 국정과제를 여성 고용과 연결 지어 입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취업에 몰려있는 고용문제가 여성의제를 바로보는 출발점이고 핵심이라고 얘기다.
그는 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지옥문을 열었다"고 했다. 성범죄가 저연령화돼 있는데다 돈벌이, 놀이문화와 엮여 있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영역과 접목돼 있다는 지적이다.
권 당선인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했으며 성폭력전문연구소 울림소장,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더불어시민당 비례 5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회나 정부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체감도가 아직도 좀 부족한 것 아닌가.
굉장히 떨어진다. 젊은 여성들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 무방비로 노출되다 보니 불안과 분노, 사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를 어떤 지형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를,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하지만 20대 여성들이 지난 4년 동안 왜 이러한 외침을 해왔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성범죄를 공동체의 신뢰관계와 안전한 삶을 파괴하는 범죄로 대응해야 한다.
■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n번방 사건을 보면서 지옥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n번방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더 추악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마약보다 더 이익이 나는 돈벌이 일 수 있다. 정말 이 모든 게 갖춰진 것 같다. 아주 선도적으로, 전문적으로, 총체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고 달려들어서 대응을 하는 모습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 디지털성범죄 대응 전문기관이 필요할 것 같다.
전문기관은 필요하다. 조직범죄 요소도 있어서 부처의 국 정도 규모의 대응 체계는 갖춰야 한다. 비영리적인 차원에서는 또래문화나 놀이문화, 집단문화 속에서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저연령화 되는 등 여러 요소들이 겹쳐있어 다루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역이다.
■ 이와 관련해 21대 국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가.
1호 법안으로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처벌법'을 발의하려고 한다.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유인단계에서부터 처벌을 해야 한다. 온라인 그루밍은 10대 성매매 문제로도 연결이 될 수 있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루밍 처벌법은 이미 64개국에서 받아들여진 사항이다.
■ 일단 국회에서 디지털성범죄 관련법들이 다 통과 된 뒤 '이제 할 일 다했다'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는데.
여성 문제의 해결, 성평등의 제자리 찾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성평등이 갈등이 아닌 해결의 소재라고 여겨져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문제가 핵심이다. 경력단절 얘기를 많이 하지만, 육아가 아닌 결혼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1차적으로 겪는 시기는 출산이 아닌 결혼이다. 여성 일자리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직장을 계속 유지하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
■ 정부정책과 의제에서 여성 문제가 많이 소외되는 것은 사실이다.
최저임금 문제를 다룰 때도 성별임금격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저출산대책에서 아직도 성평등 문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육아휴직을 확대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력이나 고용안정성 등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여성의 노동시장성은 더 떨어진다. 제도들 간의 위치를 치밀하고 균형 있게 봐줘야 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 21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성의제 의미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설득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 21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이 19%에 불과하다. 여성의제에 아주 관심이 많은 이들이 대거 진입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미투 이후 여성의제를 '갈등'으로만 조명하는 사회 분위기, 페미니즘 백래시(반발, backlash) 현상 등으로 진지하게 국회가 논의를 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 말로는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 진정성이 의심스럽기도 하지 않나.
21대 국회에서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포지셔닝 문제에 대해서 접근을 하고 싶다.
성평등은 기본이다. 그것에 대한 위치 규정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버리면서 나타나는 문제를 n번방 사건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범죄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 '위치성'을 잘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