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대유행 때마다 식량체계 변화 … 코로나로 유통망 급변

2020-05-28 10:55:54 게재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곡물농업 무너지고 축산업 발달

코로나19로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 온라인 유통 촉진

역사적으로 전염병 대유행은 식량체계를 변화시켜왔다. 전염병으로 인구 변화가 발생하면 농산물 생산량과 가격이 급변하고 위기와 기회가 반복된다. 대표적 사건이 14세기 흑사병 대유행이다.

1348년 발생한 흑사병 대유행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자 유럽 농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는데 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했는데 농산물 생산도 줄지 않았다. 농업 공황이다. 경작지는 황폐화되고 농촌은 무너졌다.

코로나19 여파로 텍사스 푸드뱅크에 늘어선 차량│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긴급 식량 원조량이 급증한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푸드뱅크에서 9일(현지시간) 사람들이 차량에 탄 채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미 노동부는 이날 지난주(3월 29일~4월 4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661만 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샌안토니오 AP=연합뉴스


이로 인해 당시 작물을 포기하고 축산으로 전환하는 농민이 증가했다. 유럽 축산업 발달의 시작이다. 영국에서는 14~15세기 곡물가격이 하락하고 양모가격이 오르자 농지에 울타리를 쳐 목초지로 전환하는 현상(인클로져)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육류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향신료와 비단 등을 만드는 값비싼 농산물 소비도 빠르게 증가했다. 향신료에 대한 욕망은 대단했다. 유럽인들은 동양의 값비싼 향신료를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농업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식민지를 늘리면서 소규모 농업은 거대한 단일작물 농장으로 바뀐다. 땅값이 저렴한 식민지에서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런 농업은 노예노동을 이용해 비참한 결과를 야기했다.

◆농식품 저장과 수송과정 관찰 = 코로나19 대유행은 세계 식량시장에 어떤 변화를 남길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곡물시장이 요동치지는 않는다. 그동안 농업기술 발달로 생산 효율이 높아졌고, 가공식품 영향으로 생산과 소비가 연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시대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식탁안보'라는 여시재 보고서에서 "흑사병 사례나 세계식량농업기구 통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식량의 총량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염병은 식량의 공급보다 수요를 더 많이 감소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유행 장기화는 식량시장을 위협하기 충분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량안보 위기를 우려한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의 전략 곡물 재고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다.

식품과 필수품을 한시적으로 수출 제한조치하는 국가도 있다. 이미 러시아 우크라이나 캄보디아 카자흐스탄은 주요 곡물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등은 국경폐쇄나 이동중지 명령을 발동했다.

곡물 등은 통상 국내 도착 기준 4~6개월 전 선 구매계약을 체결하는데 봉쇄 조치를 염두에 두고 기존 계약을 파기하거나 다른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확산하고 항구 봉쇄 조치를 발령할 경우 대안은 마땅치 않다.

이 교수는 "국제무역기구 출범 이후 자유무역의 틀 안에서 작동해 온 세계 농식품 체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시적, 지역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농식품의 세계적 저장과 수송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해 전염병 영향을 덜 받을 확실하고 안전한 농산물 수입경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상황만 보면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한 식량안보는 위협적이지 않다. 쌀은 정부와 민간 재고 물량으로 수확기까지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요 수입 곡물의 경우 2분기까지 사용 가능한 물량을 비축했다. 식용 곡물은 8~10월까지, 사료용 곡물은 최대 11월까지 버틸 수 있다.

◆자국 농산물 소비 늘어, 새로운 유통체계가 승부수 = 흑사병 유행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의 성장이 시작됐다면, 코로나19는 농산물 유통망의 변화와 자국내 농산물 소비 문화를 안착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78.2%가 건강기능식품을 더 자주 섭취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신체 면역력을 강화시키려는 행동으로 건강식품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타민 및 무기질(55.0%), 인삼류(31.7%)를 중심으로 섭취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비타민C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건강기능식품시장을 확대시켰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마스크와 식료품 등의 수급 불안을 겪게 되면서 농식품 국내 생산의 중요성이나 식량 안보에 대한 소비자의 중요성 인식이 크게 증가했다. 전체 응답자의 84.2%가 농식품 국내 생산 및 자급의 중요성에 공감했고, 식료품과 같은 필수재에 대해서는 'made in Korea'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농산물시장은 자국내 식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유통하는 지에 따라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

이에 따라 정부와 농협은 농축산물 유통 역사 500년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경매시장에서 시작되는 농산물 유통의 기반을 바꾸는 온라인 경매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이같은 시도가 성공할 경우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식량시장 변화에 긍정적 결과가 기대된다. 세계 농식품 시장이 한국의 코로나19 이후 농산물 유통망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반면 식량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코로나19 이후 식량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아이티 콜롬비아 수단 짐바브웨 타일랜드 등이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식량 유통체계 혼란으로 가격 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이 또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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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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