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나는 독일인입니다

진실과 대면하는 가해자의 용기

2020-06-12 11:07:39 게재
노라 크루크/권진아 옮김/2만2000원

K-방역으로 우리나라가 한껏 고무돼 있다. 올림픽, 월드컵 등 스포츠에서 K-팝, 대통령 탄핵에 이어 코로나19 대응까지 겹치며 어깨가 올라갔다. 벤치마킹 대상이 없다는 자신감이 아슬아슬할 정도다.

하지만 내부에는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적지 않다. 적대적이다. 과거를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이고 상반돼 있다. 진실을 들춰내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 모두 폭력적이기도 하다. 정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은 분단에 의해 만들어진 이념의 희생자, 독재의 억압 가운데 억울함을 가슴 깊이 파묻고 살아온 이들의 가해자로 취급된다. 그들의 후손들까지 그 넝마들에 머리를 들지 못한다. 반목과 저항의 연결선이 맞닿을 것 같지 않다.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과거와의 화해방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세계대전과 유태인 학살의 주범인 독일에서 운명적으로 태어난 저자는 자신의 가족사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역사와 대면했다. '하일 히틀러'로 낙인 찐힌 독일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다뤘다.

노라 크루크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며 뉴욕파슨스 디자인스쿨 부교수다. 나치 독일 역사가 침잠돼 있는 가족사를 입체적으로 따라갔고 이 과정을 역사 자료, 만화, 일러스트, 콜라주 등 시각자료를 동원해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해냈다.

기록보관소를 방문하고 가족들을 인터뷰하며 그는 개인사를 독일 전후 2세대가 독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계기로 전환시켰다.

이 책의 원제인 '하이마트'(Heimat)는 맨 처음 우리의 존재를 형성하는 장소다.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이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치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엇을 택했는지, 어린 군인이었던 삼촌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를 되짚고 되물었다. 할아버지가 나치 당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실로 확인하는 과정은 잔뜩 긴장하게 만든다. 가족사에 얼룩진 나치와 전쟁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과거와의 화해는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에서 시작하고 그 진실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

반일 반공 반독재 반민주가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부터 거세당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단죄가 아닌 진실로의 접근이어야 한다. 그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시작해야 옳다.

상대방을 비판하기 전에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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