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문제 없나

위원 선정의 공정성 확보 장치 필요

2020-06-29 11:43:06 게재

선정위원 비공개로 사건 관련성 여부 사전 확인 못해

각계 전문가 위촉하지만 국민여론 반영 쉽지 않아

구속력 없어 검찰이 이재용 기소시 제도취지 무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경영승계 의혹 관련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중단 및 불기소 처분을 권고하면서 수사심의위원 선정 과정의 공정성 확보장치가 필요하다는 등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구속력이 없어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기소할 경우 제도자체의 존립근거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시로 운영한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첫번째 권고한 내용으로 검찰 수사 적정성 확보 방안으로 도입됐다.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회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개혁위가 제도도입을 권고해 만들어졌다.

심의위 마친 위원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 26일 심의위원회를 마친 위원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건물을 나서고 있다. 이날 심의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하지만 각계 전문가들의 위원 선정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위촉권을 부여하면서 도입 당시부터 공정성 시비가 있었다.

대검 예규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위원회는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검찰총장은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의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되,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로부터 위원후보자를 추천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위원 제척 사유 사전 확인 어려워 = 당시 150명에서 250명의 위원을 선정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위원들이 위원장 외에는 비공개이기 때문에 검찰수사의 대상이 되는 피의자들과의 연관성이 있거나 반대로 친검찰 성향일 경우 심의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회피절차를 거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 수사심의에 앞서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최지성 전 미전실장(부회장)과의 친분 때문에 회피했던 것도 이미 위원장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대해 합법이라는 주장을 계속해 왔던 대학교수가 이번 수사심의위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원들의 심의에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번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참여한 김병연 교수는 언론에 수차례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에 불법 요소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또 한달 전 이 부회장을 두 차례 직접 조사한 직후에는 일부 언론에서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유죄를 전제로 몇 단계 건너뛰고 수사하는 양상"이라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수사심의위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성에 유리한 발언을 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경우 양창수 전 대법관 처럼 회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 수사심의위 불기소 결정 이유 밝혀야" = 또 불기소 결정을 한 수사심의위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수사심의위원회가 삼성사건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로 의결한 후 불기소 결정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조계 지적이 일고 있다.

김한규 변호사는 28일 "위원회가 불기소로 의견을 모았다면 통상적인 불기소이유서 정도만큼은 이유를 밝힐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현안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계속 여부와 공소제기 여부 등의 안건을 논의했고,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으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대검예규인 검찰수사심의위 운영지침에 따르면, 현안위원회는 심의의견의 공개여부, 공개시기, 공개방법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경영권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 이재용 부회장 등의 불법이 있었느냐만 판단할 일이지, 삼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위원회 도입취지에 반한다"며 "원칙적으로 검찰은 위원회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번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경제위기'를 이유로 이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실무진에 대한 재판결과를 보지도 않고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강행하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기소 여부 주목 = 위원회가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이후 검찰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2018년 초 제도 시행 이후 열린 8차례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모두 따랐기 때문에 이번 권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결정하더라도 검찰이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이라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위원회 결정을 검찰이 따를 의무는 없지만, 불기소 처분을 할 경우 1년 8개월 동안 수십차례의 압수수색까지 한 수사결과를 검찰이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 따라서 검찰이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9일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영장판사가 불구속 재판 필요성을 밝힌 점도 검찰 기소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부분이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29일 "검찰 입장도 내부에서 갈릴 것으로 본다"며 "이번 수사심의위 판단 대상자가 아닌 자만 선별적으로 기소 후 유죄판단이 나면 이 부회장 건을 뒤늦게 기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수사심의위 제도 취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선일 안성열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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