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목수·주민제자' 호흡 맞춰 재능기부

2020-07-24 11:34:02 게재

성동구 목공예봉사단 '새움'

가르치고 배우며 봉사까지

공유공간에 가구 제작·지원

'슥슥 슥슥' '드르륵 드륵'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새활용플라자 4층. 사근동 주민 정 모(54)·이 모(24)씨 모자가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매일 오전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다. 첫날 1인용 등받이 의자를 만든 뒤 둘쨋날부터는 경로당에서 주문한 접이식 탁자 제작에 분주했다. 재활 중인 노숙인 목수와 기술을 전수받은 주민강사들이 길잡이가 됐다.

성동구가 노숙인과 주민이 호흡을 맞춰 이웃과 동네에 재능기부를 하는 새로운 협치 실험을 한다. 노숙인 재활시설인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시작한 목공재능봉사단 '새움'이 기반이 됐다. 20~30년 일용직 경험이 있는 노숙인 강점을 활용,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 등에서 회복하기 위한 활동으로 시작했다.

성동구가 목공 기술을 매개로 노숙인 회복과 지역 공동체를 연계한 협치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노숙인 목수와 그들에 기술을 전수받은 마을 강사가 주민들을 위한 목공 강좌를 열고 함께 가구를 제작해 마을 공유공간에 전달한다. 사진 성동구 제작


나무를 만지고 가구와 소품을 만드는데 재능있는 노숙인들은 2017년 동아리 형태로 출발, 곧 '선생님'이 됐다. 가까이 사는 주민들에 기술을 나누고 함께 가구 등을 만들어 기부하면서는 봉사단체로 탈바꿈했다.

올해는 교육 대상이 성동구 전역으로 확대됐다. 새움이 주체가 돼 마을 공유공간을 채우는 협치사업을 하기로 했다. 노숙인 목수와 1~2년간 그들 지도를 받은 마을 강사가 11월 말까지 주민 대상 교육을 진행한다. 주 4회 교육은 다양한 가구를 만드는 실습인데 하루는 본인이, 사흘은 이웃이 사용할 제품을 만든다.

가구 지원을 희망하는 저소득층 7가구를 사례관리팀에서 선정했고 서랍장이나 TV장 등 좁은 집에서 쓰임새 있게 사용할 만한 제품 주문을 받았다. 지역아동센터나 마을활력소 경로당 등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마을 공유공간 25곳도 가구까지는 미처 공공의 지원이 닿지 않는 곳들이다. 마을복지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지원대상을 결정했다. 현장을 찾아 공간배치 등을 살펴보고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이지훈(가명·47)씨 등 노숙인 목수가 작업을 이어간다. 이씨는 청소년기부터 인생 고비마다 4번에 걸쳐 큰 좌절을 겪고 노숙생활을 하다 2년 전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센터와 인연을 맺고 전환점을 맞은 경우. 버려진 목제품을 주워 새 제품으로 바꾸는 전문가다. 그는 "대부분 10~20% 고장났는데 80~90%를 버린다"며 "이웃과 나누는 것도, 물건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가구제작기능사 필기시험에 통과, 실기시험을 앞둔 그는 "개인공방을 차려 여유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은진(45·용답동)씨 등 주민강사도 학생들이 떠난 뒤 공방을 지킨다. 2년간 기초부터 고급반까지 기술을 익힌 그는 "소품을 몇개 만들었는데 아이가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엄마작품이라고 자랑하더라"며 "배울수록 좋아 강사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방은 항상 주민들 차지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헌 제품을 새것처럼 바꾸는 리폼작업을 할 수 있다. 목수와 강사들이 작업하는 시간이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양병주 비전트레이닝센터 지역연계팀장은 "10회 과정에 150만~200만원씩 하는 비싼 수업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며 "교육시간만 문을 여는 다른 지자체 목공방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근희 구 자활주거팀장은 "활동 이후 노숙인 시설에 대해 '마을에 도움이 된다'는 평이 나온다"며 "부정적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새움은 올해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 재능기부를 넘어선 일자리와 수익 창출을 노린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코로나19로 주민활동이 위축됐지만 목공재능봉사단 기부는 코로나 이후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협력하고 상생을 준비하는 첫 걸음이자 모범적인 지역사회공헌활동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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