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범람으로 유실지뢰 '초비상'

"벼 수확철 코앞인데 논에도 못 들어가"

2020-09-07 11:21:53 게재

한집 논두렁에서 'M16 대인지뢰' 등 5발 나오기도

침수된 이길리도 16발 … "이주지원비 1600만원?"

"북한에서 내려오는 하천 물이 논으로 범람했다. 우리 논두렁에서만 지뢰가 5발 나왔다. 철원지역은 다 조생종 벼라 벌써 벼베기가 시작됐는데, 난 아직 논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

최종수 '두루미와 함께 농사짓는 사람들' 대표의 말이다.
최종수씨 논두렁에서 발견된 M16 대인지뢰. 탐지와 제거를 다른 팀이 할 정도로 위험한 폭발물이다. 사진 최종수 제공

최 대표는 "군부대에서 제거작업을 해준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작물 피해는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며 "철원군도 일반 풍수해 피해와 달라 법적 근거도 없고 보상이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4일 오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마을회관 앞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를 따라 지뢰 피해를 입은 논으로 가보았다. 제2땅굴로 가는 민통초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남측 철책선 바로 아래 지점까지 이동했다.

◆"논둑에서 M16 대인지뢰까지 나와" =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 558~613번지 일대. 북한 평강고원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천이 남측철책을 지나 토교저수지로 가는 물길 바로 옆이다. 주민들은 이 작은 개울을 '가재울'이라 부른다.

이 일대 최 대표의 논은 총 4만3000평. 올해 여름 여러차례 가재울이 범람했고 3번 이상 논이 침수됐다. 최 대표는 "지뢰 전수조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논이 2만3000평 정도 된다"며 "발목지뢰보다 폭발력이 강한 M16 대인지뢰까지 나와서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M16 대인지뢰는 폭풍을 일으켜 사람의 발목을 날려버리는 M14 발목지뢰(플라스틱지뢰)와는 차원이 다르다. 금속소재인 M16 대인지뢰는 공중으로 1.5미터 정도 솟아올라 폭발하고 살상반경이 30미터에 이른다. 대형 콤바인을 타고 있어도 생명이 위험하다.

최 대표는 "그나마 공중으로 치솟지 않는 구형 미국산으로 확인됐지만 군부대 전문가들도 지뢰 탐지와 제거를 따로 했을 정도로 위험한 폭발물"이라며 "이런 논에 콤바인 몰고 들어가서 벼를 베달라는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몇해 전 가재울 개울 안에서는 M15 대전차지뢰까지 발견됐다고 한다. M15 대전차지뢰는 13.6kg밖에 안되지만 폭발력이 강한 컴포지션 B 폭약으로 가득 차 있다. 소형차가 밟아도 터지고 50톤에 가까운 전차를 무력화시킨다. 탑승자도 대부분 사망한다.

최종수씨가 한탄강 지류 가재울 범람현장에서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논둑 20미터 뒤에 남방한계선이 있다.


◆"홍수 난 논에는 아예 못 들어가게 했다" = 토교저수지 아래 이길리마을로 가보았다. 8월 초 한탄강 범람으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던 곳이다. 마을회관도 1층이 물에 완전히 잠겨 새로 도배장판을 하는 중이었다.

김종연 이장은 "우리 마을에서 침수된 논이 30만평인데, 논두렁에서만 M14 발목지뢰가 16발 나왔다"며 "주민들에게 침수된 논에는 아예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예전에 논 개간할 때 자기 논에서 발목지뢰 300발을 수거(?)한 사람도 있다. 군인들이 자체 조사한 지뢰는 몇개인지 말을 안하는데 아마 50발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정연리 통일교육수련원 옆 개울에서 지뢰탐지작업을 하는 군인들에게 물어보니 "지금까지 총 18발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개울은 곧바로 한탄강 본류로 들어간다. 물에 잘 떠내려가는 발목지뢰가 직탕폭포나 고석정 등 한탄강 본류에 있는 관광지까지 내려갔을 가능성도 크다.

김종연 이장은 "원래 토교저수지 동쪽 산자락에 마을 터를 잡고 고사까지 지냈는데 어떤 높은 분이 와서 '북한의 오성산 GP에서 보이는 곳에 마을을 지어야 한다'고 지금 자리에 마을을 건설하게 했다"며 "군사정부 시절 전시행정으로 한탄강이 범람하는 홍수터에 마을을 조성한 것이 상습침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전체 이주 결정이 난 이길리의 경우 65가구 주민들 모두 마을 이전에 찬성한다. 그러나 재경부 지급기준이라는 가구당 1600만원의 이주보상비로는 턱도 없는 일이다.

김 이장은 "국가에서 마을 입지를 잘못 잡은 책임을 져야 한다. 영부인까지 피해상황을 보고 가셨는데, 보다 실질적인 이주 지원방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일 청와대 앞 1인시위 나선다 = 이날 현장을 같이 찾은 김용빈 철원군농민회장은 "올해 홍수로 철원군에서 침수피해를 입은 논이 230만평인데, 이 가운데 지뢰유실이 의심되는 논은 50만~60만평 정도"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예년에는 추수 전문 콤바인 업체에 위탁해서 수확을 했는데 지뢰폭발 위험이 있는 논에 누가 들어가겠느냐"며 "풍수보험으로도 보상이 안되니 콤바인에 자손보험 들고 자기가 벼를 베겠다는 농민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일부 지역의 경우 지뢰가 나와도 땅값 떨어질까봐 쉬쉬하는 경우도 있다"며 "6.25전쟁 후 철원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이런 위험 속에 살아왔다.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수 '두루미와 함께 농사짓는 사람들' 대표는 8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지뢰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나선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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