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론 기본소득 … 아직도 '보편·선별 논쟁'에 머문 정치권

2020-09-07 11:41:04 게재

여야 '모든 국민에 동일 생활비' 기본소득 도입 긍정적

재원지원금 놓고 "전 국민" "취약계층만" 공방 되풀이

보편·선별복지 장점 살리고 부작용 극복할 보완책 필요

국민의힘은 새 정강·정책 1호 과제로 기본소득제를 삽입했다.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고 명시한 것.

기본소득제는 재산이나 소득 따위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개념이다. 소위 보편복지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인한 실업 증가와 극심한 양극화, 선별복지의 폐해(복지 사각지대,낙인효과, 행정력 낭비, 빈곤 악순환)를 극복하기 위해 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발언하는 주호영 |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민주당도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해선 적극적인 편이다. 2022년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제가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여야는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놓고 "보편이냐, 선별이냐"의 해묵은 논쟁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보수야권은 과거 그대로 '재정 문제'를 앞세워 선별지원을 주장하고, 여권은 집안정리가 잘 안된다. 코로나19로 새 시대가 급속히 다가왔다는 점에서 복지형태에 대한 논쟁도 진일보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권은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전 국민에게 지급(보편)했던 1차와는 달라진 것이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여권은 "보편이냐, 선별이냐"는 놓고 치열한 내부공방을 벌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6일 선별지급 방침을 겨냥해 "분열에 따른 갈등과 혼란,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선별지급할 경우 국민 분열과 소외감이 발생할 것이란 판단이다.

이 지사는 자신의 글이 여권내에서 논란이 되자, 뒤늦게 "저 역시 정부의 일원이자 당의 당원으로서 정부·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다.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앞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낙연(선별지급) 후보와 김부겸·박주민(보편지급) 후보는 의견이 충돌했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에도 민주당에선 보편지급을, 정부는 선별지급으로 맞섰다.

보수야권은 초지일관 선별지급편에 서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방침에 대해 "이미 시름에 빠진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저소득층을 위해 보다 빠른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뒤늦게 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급계획을 밝힌 점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안 주려고 선별하는 게 아니라, 폐업과 생계 유지의 위기에 서 있는 분에게 더 주려고 집중하자는 것"이라며 "고용보험의 보호를 못 받는 500만 자영업자와 일감이 없는 프리랜서 등 취약계층에게 실효성 있는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보야권은 또 다른 입장이다. 정의당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재난수당의 사회연대적 측면, 신속한 수당 지급의 필요성, 그리고 선별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갈등 배제를 위해서도 전 국민 보편 지급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상임대표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재난은 모든 국민에게 닥쳤고, 피해는 모든 국민들이 보았다"며 "당장 급한 사람을 임의로 선별한다면 어떻게든 사각지대는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원지원금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한 이 청원에는 7일 오전 현재 2만 2800여명이 동의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국민의힘식 기본소득제'를 내놓았지만 "무늬만 기본소득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기본소득안은 기존 현금복지제도를 통폐합해 마련한 재원으로 중위소득의 50% 이하 가구만 지원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계산에 따르면 61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혜자보다는 범위가 늘지만, 전 국민의 20%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기본소득제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국민의힘 출신 인사는 "코로나19를 비롯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복지형태도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며 "언제까지 선별이냐 보편이냐는 기본 논쟁만 되풀이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의 장점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극복할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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