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정악화, 투자 확대 불가피하지만

전문가 참여 확대, 투자풀 도입 필요

2020-10-30 11:14:00 게재

"독자적 투자정보 수집능력 없어" … 미국대학, 투자거물 영입하고 전문조직 운영

이런 상황은 투자전문회사 이상의 전문성과 인력을 갖춘 미국 주요 사립대학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하버드대 재단의 기금은 약 48조원에 달한다. 기금운용은 하버드운용사(Harvard Management Company · HMC)가 담당한다. HMC에는 약 200여명의 투자전문가와 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HMC 최고경영자(CEO)들은 투자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영입된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계속되면서 대학의 재정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등록금 반환 등 재정수요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결국 대학의 주식투자를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독자적 투자능력이 부족한 대학들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9월 10일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1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코로나시대 대학생 권리찾기 운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등록금 100만원 상한제 추진 및 등록금 반환에 대한 교육부의 관리감독과 기준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예일대는 36조원 넘는 자금을 굴리고 있다. 예일대는 최근 20년 간 연평균 1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데이비드 스웬슨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형 투자회사에서 일하다 1985년 영입됐다. 그는 소위 '예일 모델' 전략으로 기금 규모를 30배 넘게 불렸다.

스탠퍼드대도 투자 수익을 통해 매년 1조원 이상의 대학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약 32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매니지먼트컴퍼니(SMC)는 23명의 투자팀과 52명의 지원 인력으로 두자리 수익률을 올렸다. SMC가 처음 설립된 1991년부터 따지면 연평균 수익률은 11.7%에 달한다.

특히 이들 대학의 기금운영 실적을 학교 구성원뿐 아니라 미국사회가 모두 알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투자결과는 이사회와 총장 등 대학 지도부에 대한 평가로 직결된다.

◆외부 전문가 적극 활용 포스텍 = 국내 대학 중에는 1조원 넘는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는 포스텍(포항공대)이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 대학은 운용사 위탁운용을 통해 예금이나 채권 투자에 그치지 않고 주식이나 대체투자 등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대체투자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투자 상품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상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벤처기업 원자재 선박 등 다양하다.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고 주식에 비해서는 위험성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포스텍 관계자에 따르면 주식에서는 배당으로만 연 2~4%, 대체투자에서는 연 4~5%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성과의 배경에는 위원회를 통한 신중한 판단이 한몫을 했다.

이 관계자는 "재단 재정운영위원회와 학교 기금운영위원회 모두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정 규모 이상 투자는 반드시 이사회 보고를 거치도록 시스템화했다"면서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최소한의 수익률과 안전성이 확보된 상품을 개발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 기금운영 조직도 없어 = 하지만 우리 대학들의 투자규모로 미국 대학처럼 고연봉을 보장해야 영입이 가능한 외분전문가를 영입하거나 투자전담조직을 꾸리는 것도 여의치 않다.

실제로 대형 사립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들이 기금운용 조직도 없이 투자에 나서고 있다.

몇몇 대학들이 운용사에 자금을 위탁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작고 보수적인 투자 지침 등으로 큰 성과가 없다.

하버드대 한 대학의 적립금이 48조원에 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립대학 전체 적립금 규모는 8조원 가량이다.

수도권 소규모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이 전문가 자문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은행이나 증권회사 직원에게 좋은 상품있냐고 문의하는 수준"이라면서 "외부에서 보면 황당한 투자결정 과정이 어쩌면 우리 대학들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대학도 이런 과정을 통해 투자를 했다 막대한 손해를 봤던 트라우마 때문에 주식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교육여건 개선에 대한 학내외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현재 상황을 저금리의 안전자산 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또 지방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스스로가 전문성을 갖출 수 없다면 위탁투자 비율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등록금 규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이 저금리의 안전자산에만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사실 독자적으로 투자정보를 수집할 능력이 있는 대학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투자와 관련한 전공의 교수들이 참여해 논의를 한다지만 변수가 많은 금융시장 특성상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에 투자할 자금을 임시로 금융시장에 맡기는 것인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대학이 너무 공격적인 투자를 해서는 곤란하다"며 "사학진흥재단 등에서 투자풀을 운영하고 정부는 참여한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기금투자풀에 대한 논의는 2007년 적립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되면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기금규모가 제각각인데다 설립배경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른 대학들을 하나로 묶는 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금융계와 대학가에서는 투자풀에 참여하는 대학에 교육부의 대학평가시 가점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해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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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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