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노린 사기대출 '김왕관' 징역 5년

2020-11-16 12:13:19 게재

비대면대출 허점 악용 7억원 빼돌려

20세 주범, 또래 미성년자들 속여

경찰, 금융당국에 제도 개선 요구해

올해 초 '애미론' '애비론' '할배론'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사기대출범 '김왕관'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금융권의 온라인 대출 허점을 악용한 신종수법으로 확인된 피해자만 수십명에 달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4단독 김세현 판사는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왕관' 최 모씨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또 배상신청을 한 A씨 등 3명에게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하거나 피해자들의 통장에 돈을 인출해 최씨에게 전달한 일당들은 징역 1~3년의 실형 또는 집행유예형을 받고, 일부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명령도 받았다.

최씨는 2019년 말부터 '김왕관'이라는 인터넷상 별명(닉네임)을 사용하면서 미성년자 중 급한 돈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유혹했다.

주로 '미성년자 급전 문의, 만19세 이상 은행권 대출문의, 미성년자 급전 준비물, 부모님 명의 휴대폰, 신분증'과 같은 광고 문구를 집어넣었다.

대개 패딩 등을 구입하겠다며 100만원 내지 200만원의 소액 대출을 원하는 미성년자가 목표였다.

실제로 10대 청소년 A군이 페이스북 광고를 보고 최씨에게 연락했고, 최씨는 소액 대출이 가능하다며 A군 모친의 신분증 사진을 파일로 전송 받고, 모친 휴대폰에 전송된 금융기관 인증번호를 받아 냈다. 이후에는 A군으로 하여금 모친 휴대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한 뒤 개인정보를 추가로 알아냈다. 최씨는 이후 A군 모친 명의로 하나은행 계좌를 개설한 뒤 공인인증서까지 받았고, 2차례에 걸쳐 6800만원을 대출 받아 빼돌렸다.

이런 방식으로 수많은 미성년자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들의 개인정보를 최씨에게 넘겼다.

아버지의 명의를 도용하면 '애비론'으로, 어머니 명의는 '애미론', 할아버지, 할머니 명의는 '할배론' '할매론'이라고 불렸다. 보호자 대신 형제 명의를 넘긴 경우도 있었다. 신분증과 휴대전화 정보를 손에 쥔 최씨는 피해자들의 금융정보를 이용해 수백만원에서 8000만원이 넘는 대출금을 빼돌릴 수 있었다.

최씨는 이 모든 과정을 홀로 하지 않았다. 주로 자신이 설계하고 관련자들에게 지시를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최씨의 손발이 있었다. 최씨의 고교 동창인 장 모씨는 범행 가담 정도가 중해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장씨와 같이 속칭 '토스업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최씨에게 먹잇감을 수시로 갖다 바치고 최씨에게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고액알바'의 유혹을 참지 못한 이들이 인출책으로 나서기도 했다.

최씨는 수익금을 안전하게 현금화 하기 위해 불법 인터넷도박을 이용했다. 인터넷도박이 열리는 사이트를 찾아가 승/패 양쪽에 돈을 걸고 인터넷사이트에 송금했다. 이는 인터넷 도박에서 '양방 배팅'으로 불리는 세탁방식이다.

최씨 범행 피해자들의 호소가 방송 등을 통해 알려졌고, 경찰은 지난 2월 최씨와 일당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김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을 속여 금융기관을 통한 비대면 대출을 이용한 사기 방식으로 일종의 보이스 피싱"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씨에게 "피해금액이 7억원이 넘는데도 피해자들에 대한 별다른 피해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 범행을 주도했다"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나머지 공범들에 대해서도 가담 여부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 등을 고려해 양형이 이뤄졌다.

일당을 검거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일부 금융기관의 경우 신분증 실물이 아니라 사진만 있어도 비대면으로 공인인증서 발급이나 계좌 개설이 가능했고, 원격조종 앱이 실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비대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관련 수사결과를 금융당국에 통보하면서 비대면 계좌 개설 관련 제도 개선을 요청한 바 있다. 그는 또 "쉽게 비대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데 이런 범행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최씨 등은 1심이 선고된 이후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오승완 김형선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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