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바람직한 법관 정원 모색 토론회

"'좋은·공정한 재판' 위해 법관 증원 필요하다"

2021-02-02 12:26:08 게재

법관 "300~600명 늘려야" … 변호사 94% 증원 찬성"

법관·변호사·교수 등 법학 전문가들 대부분 '좋은 재판'과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법관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눈길을 끈다. 현직 법관들은 현원의 약 10~20%인 300~600명 정도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으며, 변호사들은 설문조사 결과 94%가 법관 증원에 찬성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오재성)가 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등기국 중회의실 및 온라인으로 개최한 '법관의 업무 부담 분석과 바람직한 법관 정원에 관한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법원 안팎에서 민사사건을 중심으로 재판 지연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마련됐다. 판사들의 잇따른 과로사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판사의 업무 부담 증가와 인력 조정 필요성 등을 제기해왔으나, 법원 차원에서 공개 토론회를 연 것은 처음이다.

◆"1인당 업무부담 줄여야" =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직 판사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법관의 업무 부담이 큰 만큼,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기 위해 지금보다 대법관 및 법관 수를 늘려 판사 1인당 업무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의견이 모아졌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좋은 재판의 요소인 '신속한 재판의 원칙'의 관점에서도 하급심 법관 증원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지영선 대한변호사협회 기획위원(변호사)은 "충분한 구술변론 및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 법관의 절대적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신유 사법정책연구원 판사는 "법관 업무 부담 해소를 위해 판사정원 증가 외에도 '법관임용지원자 부족 문제 해결' '1심 단독심화' 등의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희 부장판사도 "법조일원화로 인한 고령화에 대응하고 법제도와 사회 변화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재판'을 하려면 법관 대폭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판사 정원 대비 충원율 92% = 한국법경제학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판사 정원은 3228명인데, 실제 현원은 2966명으로 충원율이 9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법경제학회장인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원에 비해 현원이 적은 원인을 분석해 봐야 한다"면서 "판사 한 명이 극단적으로 긴 시간 일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사건 한 건에 실제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등 판사 업무 부담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판사의 업무 경감 정책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자원 확충이 필요하다"며 "판사 임용제도를 개선하고 법원간 인력 배분 효율화 등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민사소송을 중심으로 처리기간은 40년 동안 계속 증가하고 항소율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통계적 관점에서 볼 때 법원 판결의 신속성과 공정성 지표가 나빠졌다"고 했다.

윤 민 의정부지방법원 판사는 "법관의 적정한 업무부담은 좋은 재판 구현의 전제가 되고, 국가 사법작용과 관련된 공적 문제로서 국민의 권리 보호와도 직결된다"며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건가중치를 고려한 연간 사건 수가 각 연방지방법원의 법관 1인당 430건을 초과하면, 2년에 1번씩 의회에 해당 법원의 법관 증원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법관 48%, 주 평균 52시간 이상 근무 = 이날 토론회에선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판사 정원의 적정성에 대한 현직 판사들의 인식도 공개됐다.

홍보람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토론에 앞서 전·현직 법관 678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를 제시했다. 300명 이상이 지금보다 인원을 10~20%(300~600명)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또 평균 주52시간 이상 근무하는 법관들은 48%였으며, 주말 근무는 약 60%, 절반이 주3회 이상 야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무 수행으로 인한 '번아웃'(탈진)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약 52%에 달했다.

홍 연구위원은 "주 평균 근무시간이 길수록, 주말근무와 야근 빈도가 높을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받고 심리적 탈진을 많이 경험한다"며 "판단의 정확성 및 적시성 등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법관의 과도한 장시간 근무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업무부족시간(추가투입필요시간)을 기준으로 부족한 법관인원을 산출하면 약 900명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적정 업무부담 수준을 위해서는 더 많은 법관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들의 인식도 판사들과 유사하다. 변호사 94%가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강경희 대한변협 기획이사는 "2018년에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법관 및 대법관 증원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변호사 1961명 중 1857명(94%)가 법관 증원에 찬성했고, 반대는 60명(3%)에 불과했다"며 "찬성 이유로는 재판심리 충실화 도모, 법원의 업무과중 해결, 재판지연 해결 등을 꼽았다"고 했다.

강 이사는 "법관 증원 폭에 대해서는 844명(43%)이 '현재 정원의 10% 이상'이 적절하다고 봤으며, 702명(35%)은 '인구와 사건증가율에 따른 증원', 284명(14%)은 '현재 정원의 5~10% 미만 정도를 증원하면 된다'고 했다"며 "1544명(78%)은 '대법관 증원'에도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변호사들은 법관 및 대법관 증원은 재판심리의 충실화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자, 업무과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토론회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와 법무부, 사법행정기구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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