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어린 여성으로 위장만 해도 개떼처럼 몰려들어

2021-02-15 11:51:45 게재

기회제공형 위장수사 당장 가능

안전장치 마련해 법제화해야

"프로필만 어린 여성으로 설정을 해놔도 (성인 남성들이) 용돈 주겠다며 개떼처럼 몰려드는 게 온라인 공간의 현실이에요.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그동안 사실상 방치돼 왔는데 이걸 어떻게 할 거냐, 결국은 위장수사 잠입수사로 가는 게 대세라고 봅니다. 우려가 있다면 우려만 하고 있어선 안 되잖아요. 논의를 하고 대안을 내놔야죠."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한 위장(함정·잠입)수사 법안에 대해 9일 의견을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선 지금도 계속해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발의된 법안에 뭔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얼른 논의를 해서 대책을 마련할 일이지 계속 발목만 잡고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다.

국회에선 위장수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문제를 놓고 법무부와 경찰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무법천지인 온라인 공간에서 피해자가 되기 쉬운 아동청소년보호 활동을 해온 현장 활동가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조 대표는 20여년간 반성매매운동을 펴왔고, 2012년부터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를 예방·지원·치유하는 활동을 해왔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위장수사 법안이 발의됐는데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사이버공간에서 이뤄지는 범죄는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n번방 사건 이후부터 대처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장수사는 해외사례를 봐도 거의 대세라고 본다. 우려가 있다면 논의를 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런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볼 때 위장수사의 필요성을 느끼나.

사실 기존에 경찰이 위장수사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 성매매착취를 당하고 있는 아동청소년에게 성매수자처럼 접근해서 성매수자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했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수사 과정에서 아동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범죄자로 인식하게 돼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성매수자나 알선자같은 성범죄자들에게 오히려 더 의지하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 경찰에서 이야기하는 위장수사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경찰이 아동청소년으로 위장하는 방식을 말하는 걸로 안다.

사실 이 방식은 지금도 가능하다. 범의유발형이 아니라 기회제공형 위장수사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게 아니라 그냥 채팅앱에 어린 프로필로 들어가 있기만 해도 쪽지가 온다. 용돈으로 몇 만원 준다고 하는 것 자체가 권유나 유인이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다. 이런 성인들만 잡아도 1000명은 잡을 수 있다. 채팅방에 경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동청소년에게 성적인 권유나 유인을 하기만 해도 바로 잡힐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 범죄자들의 범죄동기같은 것이 확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유인하더라도 잡히는 사람이 적다 보니 그런 사례가 주변으로 확산된다. 주변에서 듣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곧 경찰에 잡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안 잡히는 걸 보면 범의가 생기게 되는 거다. 이런 걸 꺾어줘야 한다.

■위장수사의 인권침해적 측면을 고려해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조주빈 박사방 일당처럼 디지털 성범죄를 조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 내에 잠입하는 수사를 할 경우에 영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 걸로 안다. 조직 내부자로 들어가서 조직에 관여돼 있는 범죄자들을 다 잡아내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는 실제로 안전장치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 안전장치가 영장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다른 장치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국회에서 논의가 되어야 하는데 인권침해가 우려된다고 하면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그냥 걱정만 하고 있으면 되나. 논의를 해서 대안을 마련해야지.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선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디지털 성착취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같은 여러 가지 조직화돼 있는 범죄에 대해 경찰이 위장·잠입수사할 수 있도록 법제도화하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들도 적극적인 위장잠복수사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할 텐데, 외국 사례들을 참고해서 어떤 안전장치를 만들지 생각해내면 된다.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할까.

전문성과 윤리교육이 필수적이다. 일선 경찰서에서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각 지역의 경찰청 단위로 특화시켜서 교육받고 윤리적으로 훈련받은 수사인력을 배치해서 위장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선 공청회도 열고 현장 의견을 더 많이 듣고 쟁점을 녹여서 안전장치가 마련된 법안이 통과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빨리 법안을 만들수록 피해자가 줄어든다. 지금까지 (사이버 공간을) 너무 놔뒀다. 이제는 너무 어린 아이들까지 마수에 걸려들어서 성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회가 해법을 만들라는 게 우리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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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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