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수사 개시방법 놓고 정부 내부서 이견

2021-02-15 11:51:44 게재

경찰 "아이들 피해 막는 게 최우선"

법무부 "경찰 권한 남용 가능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위장수사 법제화를 놓고 경찰과 법무부가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법'(아청법) 개정안에 대한 기관 간 입장차를 조율하기 위해 3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과 송민헌 경찰청 차장을 국회로 불렀다. 이 자리에는 여당 소속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간사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한병도 간사도 참석했다.

한 배석자에 따르면 "위장수사를 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지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신경전을 벌였다"며 "결국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국회 여가위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위장수사는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수사 대상자와 접촉하거나 특정 조직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온 국민을 경악시킨 n번방 박사방 등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점점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위장수사가 필수라는 게 경찰 입장이다. 현재도 판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위장수사가 이뤄지지만,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줄이려면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경찰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위장수사를 통한 경찰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막으려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상 영장은 검사가 청구하면 판사가 발부한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에 영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사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한 경찰관은 "다크웹이나 텔레그램에서 수시로 방을 바꿔가며 이뤄지는 성범죄를 수사하면서 한가하게 영장 발부를 기다릴 수가 없다"며 "아이들이 성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을 신속히 막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개시 자체는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며 영장주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면서 "위장수사도 수사의 일종이므로 개시도 범죄혐의와 수사의 조건이 갖춰지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국가경찰위원회나 국회, 언론, 시민단체 등이 경찰의 권한 남용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맞선다.

국회 여가위는 조만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아청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권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은 경찰이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 실행을 저지할 수 없는 등의 경우 신분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가위에서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아청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갈 경우 법안 심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여당 관계자는 "법사위는 검찰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헌법상 대원칙을 존중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가위 논의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법무부를 제외하면 경찰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논란이 제기된 이튿날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정세균 총리는 수사개시방식과 관련한 법무부와 경찰의 이견에 대한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의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면서 "제도는 도입했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서 이행이 안된다면 그런 거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상급 경찰관서 수사부서장의 동의나 결재를 받아서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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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 연합뉴스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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