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이 일하는데 5인 미만 사업장?

2021-04-01 11:12:04 게재

"근기법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확산법" … 쪼개기, 사업소득자로 위장 등 다양

# 최근 경기 남양주 진관산업단지내 A플라스틱공장에서 130여명이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1000여명의 노동자가 검진을 받았다. 이 상황에서 10여명이 집단해고됐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지급과 부당해고에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5인 미만 사업장'이라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A공장 사업주가 노동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했으나 근로계약 당사자는 본 적도 없는 B사의 대표였다. 하나의 사업장을 서류상 두개 이상으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것이다. 게다가 10명의 노동자는 B사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근로계약은 가짜였고 4대 보험 가입도 안 돼 있었다.

"5인 미만 노동자는 죽어도 되나"│1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노동운동단체 권리찾기유니온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에서 청구인 및 담당 변호사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권리찾기유니온(권리찾기)은 1일 서울 영등포 한국공인노무사회관에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300일!' 언론발표회를 열고 지난해 6월 4일부터 진행된 공동고발운동 전체현황과 종합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권리찾기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근로기준법의 차별조항을 악용해 불법·편법으로 사업장의 상시근로자수를 5인 미만으로 위장하고 근로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업장'으로 규정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은 △1개 사업장을 서류상 2개 이상으로 쪼개는 A형 △임시직·사업소득자로 위장, 4대보험 미신고하는 B형 △5인 이상이 근무하지만 초과수당이나 연차휴가를 부여하지 않는 등 근기법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C형으로 분류했다.

고발·청원·구제신청을 진행한 80개 사례 분석결과(중복 포함) A형이 73.8%(59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B형이 43.8%(35개), C형 8.8%로 나타났다. A형과 B형 융합형도 28.8%(23개)로 조사됐다.

B유형 사례 중에는 4대보험 미가입 비율이 91%에 달했다. 직장가입자로 4대보험 취득신고를 했으나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금액을 하향해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4대보험에 미가입시키는 대표적인 수법은 근로계약이 아닌 노무계약을 체결하고 3.3% 사업소득을 납부하는 독립된 사업자로 등록하는 방식이다.

정진우 권리찾기 사무총장은 "동일 사업장에서 서류상 2개 회사로 쪼개 근무하는 유형이 제일 많았고 심지어 10개 이상으로 쪼개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형 아웃렛의 경우 각 식품코너마다 개별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고, 더 나아가 가짜 3.3% 사업소득세 납부 계약을 종용해 실제 근무인원이 200여명이 넘는 데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예도 있었다.

이들을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업(26.3%), 숙박·음식업(17.5%), 개인서버스업(10.0%), 제조업(8.8%) 순이었다. 사례는 미용·레저·스포츠업, 교육서비스업, 사업지원, 출판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었다.

피해상황별로는 △시간외·야간근로수당 미지급 77.5%(62개) △연차휴가 미부여(75.0%) △무급휴직 강요와 부당해고(45.0%) △근로시간 제한 위반(35.0%) △휴업수당 미지급(11.3%)으로 조사됐다.

전체 제보자 중에서 4대 보험 미가입자는 절반을 웃도는 52.5%로 나타났다.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은 경우는 32.1%, 근로계약서 작성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17.9% 달했다.

정 사무총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 핵심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근기법이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을 확산시키는 근원"이라며 "죽음마저 차별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짜 5인미만 사업장 확산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이날 일선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는 법률지원단과 공동으로 제안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운동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비정규직위원회(위원장 문현군)가 연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법을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이들 사업장의 경우 엄격한 법 집행이 어려운 만큼 계도기간 부여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근로감독 분야에선 지방정부와의 협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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