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구속-출소-투약 … '중독 쳇바퀴' 언제까지

2021-04-28 11:40:04 게재

마약 재범인원 역대 최고 … 재범률 수년째 30% 이상

'쥐꼬리' 예산, 전문인력 부족에 지정병원제도 부실화

"형사사법제도를 치료 관문으로 삼아야" 국제사회 권고

단약(약물을 끊는 것)의 길을 걷고 있는 40대 A씨. 20대때 처음 알게 된 마약의 유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약한 약물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필로폰 주사를 꽂게 됐다.

약을 사느라 빚까지 지는 나날이 계속됐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필로폰에 빠진 지 2년 정도 됐을 때 판매자와 함께 경찰에 잡혔다.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마약중독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자 자괴감이 몰려왔다. 구속 첫날 극단적 선택을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재판에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1년반 정도 단약을 하면서 새 삶을 얻은 듯했지만 착각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생기자 곧바로 마약의 유혹이 찾아왔다. 스스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독한 마음을 먹고 경찰에 자수해 다시 구속됐다. 보석으로 나와 다시 단약중인 그는 말한다. "관 뚜껑 닫을 때까지는 약 끊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 정말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후회스러워요."


◆지난해 재범인원 6000명 육박 = A씨는 경찰에 자수까지 하며 단약의 의지를 보였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마약중독자들의 현실은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약물에 질질 끌려가는 삶이다. 출소할 때에는 '다시 작대기(필로폰 주사기를 뜻하는 은어)를 꽂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며 이를 악물지만 교도소에서 나온 줄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찾아오는 판매자, 중독자 친구들과 함께 투약-구속-출소-투약-구속-출소를 반복하는 '악마의 쳇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대검찰청 마약류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는 검거된 마약사범 숫자도, 재범인원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8050명, 재범자는 5933명이었다. 대검찰청이 연간 마약사범 통계치를 작성한 이래 가장 많다.

특히 재범인원은 2016년 5285명에서 2017년 5131명, 2018년 4622명으로 줄어 들다가 2019년 5710명으로 1000명 이상 급증한 뒤 지난해에도 증가세를 이어가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마약류 재범률은 수년째 3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마약사범 10명 중 3명 이상은 어김없이 다시 마약에 손을 대 수사기관에 잡힌다는 뜻이다. 지난해 재범률은 검거된 마약사범 숫자가 워낙 많아 비율상으로는 예년보다 줄어든 32.9%를 기록했지만 30%대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마약사범 재범률은 2016년 37.2%로 최고를 기록한 뒤 2017년 36.3%, 2018년 36.6%, 2019년 35.6%를 기록했다.

마약류범죄는 출소 후 같은 범죄로 재복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범죄이기도 하다. 지난해 법무부에 따르면 마약류 범죄로 출소 후 재복역한 수용자 가운데 88.8%는 또다시 마약류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다.

◆치료 실적은 바닥 = 역대 최고치의 재범인원 등의 통계는 마약사범의 치료재활과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지만 치료 실적은 부진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마약 관련 법제도는 수사기관을 통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치료재활정책을 병행하는 형태로 돼 있다. 치료나 재활 없는 엄벌주의만 고수할 경우에는 재범률만 높일 뿐이라는 그동안의 지적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다. 예를 들어 검찰에선 기소 단계에서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치료보호조건부 기소유예 등을 통해 마약류 중독자들에게 치료재활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했고, 법원에서는 치료명령이나 치료감호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들의 활용이 부진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2019년에 전국 21개 치료보호지정병원에서 치료보호를 받은 마약류 중독 환자는 260명이다. 이 중 대부분은 자의로 병원을 찾은 경우였고 검사가 의뢰한 경우는 18명(6.9%)에 그쳤다. 약물중독재활센터에 수용해 치료를 받도록 하는 치료감호 숫자도 해마다 30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건수만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2019년에는 800명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 숫자를 다 합쳐도 전체 마약사범과 비교하면 10% 미만만 치료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형사사법절차 단계별로 치료시스템 적용해야 = 마약사범 치료와 재활을 위해선 관련 인프라나 투입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됐지만 개선은 더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를 위한 예산은 2019년 기준 1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민간의료기관에 대해선 국비와 지방비 5대5 비율로 지원하는데 지자체 재정 사정으로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부실로 이어진다.

전국 21개 치료보호 지정병원 중 실제로 환자를 받은 실적이 있는 곳은 2, 3군데뿐이다. 이 중 국립병원이 5곳이지만 국립부곡병원을 제외한 4개 국립병원의 최근 3년간 치료보호실적은 단 1건이다.

정부는 1월 발표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서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서비스 강화를 약속했다.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지원사업과 중독재활시설을 확대하고, 중독전문병원 제도를 신설해 17개 시도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 교수는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재활부분은 수년 동안 바뀐 게 거의 없다"면서 "지자체의 중독재활시설은 알코올중독자의 치료재활과 관련한 프로그램에 특화돼 있어서 마약류 중독자들은 이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마약류 남용의 실태와 대책 보고서'에서 '형사사법제도를 치료의 관문으로 삼으라'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권고를 인용하며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단계별로 치료 시스템을 적용해 시행한다면 재범률에 분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은 마약오염국" 연재기사]

김선일 김형선 박광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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