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이었던 핀테크, 이젠 기득권 됐다

2021-07-19 13:31:15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투자유치 급물살 … 글로벌 금융·지급결제 시장의 10% 가져가"

핀테크 스타트업들에 대한 벤처자본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핀테크기업들은 벤처자본으로부터 340억달러의 투자금을 획득했다. 데이터제공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역대 최고액이다. 벤처자본가들이 올해 투자한 총금액의 20%가 핀테크로 향했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둘러싼 거래 역시 아찔할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데이터제공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벤처자본기업들은 올해 핀테크 스타트업 주식 700억달러어치를 현금화했다. 2020년 전체 기간의 거의 2배 수준이다. 여기엔 32건의 상장, 327건의 합병이 포함돼 있다. 10억달러가 넘는 합병거래는 21건에 달했다.


신용카드기업 비자는 지난달 말 18억유로(21억달러)를 들여 스웨덴 지급결제 플랫폼 '팅크'를 인수했다. 미국 최대은행 JP모간체이스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특화된 개인운용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기업 '오픈인베스트'를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JP모간의 이번 인수는 지난 6개월 새 세번째 거래에 해당한다.

독일의 예금이체 플랫폼인 '레이즌'과 '디파짓 솔루션스' 같은 스타트업들은 합병을 논의중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일부는 상장을 선택하고 있다. 이달 7일(현지시각) 국제송금을 전문으로 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와이즈'가 영국 런던증시에 상장해 90억파운드(122억달러) 가까운 자금을 모았다. 직불카드 핀테크기업인 '마케타', 수수료 없는 온라인증권사 '로빈후드', 온라인대출 핀테크기업 '소파이' 등도 수십억달러 기업공개(IPO)를 성사시켰거나 계획중이다.

덩치 큰 핀테크기업에 투자 집중

이같이 핀테크 스타트업 관련 굵직한 거래에는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반영돼 있다. 더불어 금융업계에 부는 강력한 디지털 바람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지는 "무언가 보다 심오한 것이 담겨 있다"며 "한때 금융업계의 반란아로 불리던 핀테크기업들이 이제 기득권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현재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붐은 규모를 넘어서는 여러가지 새로운 특징을 보인다. JP모간체이스의 유럽·중동·아프리카 기술투자금융 헤드인 재비어 빈델은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가 덩치가 큰 기업들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형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고전했다. 이들의 사업모델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올해 1분기 핀테크 스타트업의 투자유치액은 대부분 1억달러를 넘었다. 덩치가 클수록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가 일어나는 지역도 변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핀테크 스토리는 미국과 중국에 집중됐다. 현재는 유럽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이자 없는 신용카드'로 유명한 스웨덴 온라인결제서비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지난달 몸값이 460억달러로 높아졌다. 서구 핀테크기업으로선 두번째 높은 기록이다. 이달 15일 영국 런던 소재 레볼루트는 8억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레볼루트의 기업가치는 330억달러에 달한다. 중남미와 아시아의 스타트업, 그리고 스탠퍼드대를 나왔거나 실리콘밸리에서 잔뼈가 굵은 창업자들이 이끄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자석과 마찬가지다. 브라질 최대 디지털은행인 누뱅크는 3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핀테크 열풍은 지급결제 영역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경제선진국가들 내 저축이 폭증했다. 소비지출이 미뤄지면서다. 이같은 저축자산을 겨냥한 자산테크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온라인주식중개나 투자조언 핀테크 등이다. 보험관련 핀테크기업들은 올해 1분기 전세계 82건의 거래를 통해 18억달러를 모았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영역을 넓히면서 대규모 투자유치를 성사시키는 상황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핀테크 시장이 급성장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격리, 봉쇄가 이어지면서 소비자와 기업들은 핀테크에 급속히 적응했다. 그리고 전통은행들의 지점과 상점은 팬데믹 동안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상거래와 금융에서 광범위한 디지털화가 진행됐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새로 정착된 디지털금융 흐름은 계속 발전할 전망이다.

핀테크에 특정된 요소들 역시 빅뱅의 배경이다. 오늘날 핀테크 스타기업들의 대부분은 하룻밤 새 성공한 게 아니다. 대부분 2010년대 초 설립됐다. 설립 이후 사용자 숫자가 수백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수익성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벤처자본과 사모펀드기업의 투자 레이더에 잡힐 정도로 충분히 커지면서 투자 빅뱅이 이뤄질 수 있었다. 미국 기반 'TCV'(독일판 로빈후드인 트레이드 리퍼블릭에 투자)나 일본의 '소프트뱅크'(최근 클라르나에 투자), 스웨덴의 'EQT'(지난달 네덜란드 지급결제 기업 몰리에 투자) 등이 대표적이다.

핀테크, 지역과 영역 모두 확대

그리고 블랙록 같은 자산매니저, 싱가포르 GIC 등과 같은 국부펀드,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와 같은 연금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은 최근 수년 동안 거대 핀테크기업의 지분을 획득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이들은 상장 직전에 있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핀테크기업들이 다음 단계를 준비하면서, 굵직한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베팅하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전통금융 서비스를 세분화해 틈새를 파고들었다. 틈새시장에서 기존 은행들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몸집을 불린 핀테크기업들은 이제 서비스를 통합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금융의 종합플랫폼이 되려면 한두가지 특화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핀테크기업이 작은 기업을 인수하는 건 이같은 측면에서 확실한 지름길을 제공한다. 거대 핀테크기업의 기업가치가 높은 것은 중소 규모 핀테크기업을 낚아챌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인수과정도 주식교환의 저렴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서구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핀테크기업인 스트라이프가 적절한 사례다. 10년 전 창업한 스트라이프는 기업들의 전자결제 플랫폼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업가치가 950억달러에 달한다. 스트라이프의 사업영역은 기업을 위한 세무서비스에서 금융사기 방지로까지 확대됐다. 이같은 영역 확대는 기본적으로 관련기업 인수작업을 통해 이뤄졌다. 스트라이프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3개의 핀테크기업을 인수했다.

비슷한 논리는 전통 금융권에도 적용된다. 신용카드기업들은 온라인 지급결제 혁신에 대비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존 은행들은 핀테크를 통해 디지털 격차를 메우고 비용을 줄이며 대출 중심의 사업모델을 다각화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와 JP모간체이스는 수많은 중소규모 핀테크 기업들을 인수해 자사의 소비자 애플리케이션 아래에 규합하고 있다. '구글페이'의 사업개발전략 헤드인 닉 밀라노비치는 "그 결과 핀테크와 전통금융권의 구별은 결국 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핀테크에 대한 투자, 인수합병 러시는 당연히 리스크를 수반한다. 그중 하나는 핀테크에 쏟아부은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다. 비자는 팅크의 연매출 60배에 달하는 가격에 사들일 계획이다. 와이즈는 매출의 약 20배, 수익의 약 285배 가치를 인정 받는다. 특히 은행들은 유망한 핀테크기업들의 몸값이 고공행진을 해야 비로소 기업의 존재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부풀어오른 가격에 매입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리스크는 경쟁과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수되기 전 전도유망했던 핀테크들은 막상 인수되고 나서 그 매력을 잃을 수 있다. 기업문화의 충돌이 큰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 핀테크 고객들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은행 BBVA는 2014년 1억1700만달러를 들여 미국 온라인은행 '심플'을 인수했지만 결국 해당 사업부를 폐쇄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는 지적이다. 핀테크기업들의 존재감이 임계질량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 핀테크기업들의 총가치는 1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지급결제 산업가치의 10%에 해당한다. 2018년엔 4%에 불과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핀테크기업들 일부는 주저앉겠지만, 전체적으로 몸값은 더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핀테크기업 주식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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