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영화' 수준 라임 이종필 도피

2021-07-26 12:07:07 게재

"김봉현 지시" … 은신처 5차례 옮겨

"도주 결정은 이종필 자신이" 반박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보석 석방 후 처음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은 자신의 도피 과정을 김 전 회장이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부(이상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3일 '라임 사태' 핵심 피의자 김 전 회장 등의 재판에서 이 전 부사장은 증인으로 나와 자신의 도피 과정을 진술했다.

이 전 부사장은 2019년 11월 라임의 투자 대상 상장사 리드의 800억원대 규모 횡령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전날 잠적했다.

이 전 부사장은 "(영장실질심사) 전날 만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김 전 회장에게) 물었더니 자신 같으면 도주하겠다고 해 도피하게 됐다"며 "휴대폰도 새 것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은 도피 결정 당일 김 전 회장의 지시대로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고 했다. 부산에 도착해 김 전 회장이 보내준 차를 타고 전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왔다고도 말했다.

서울 광진구 한 호텔에 머문 이 전 부사장은 구리시 오피스텔로 은신처를 옮겼고 다시 강남의 호텔에서 생활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동구 암사동 아파트로 피신처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호텔비 등은 김 전 회장 측이 계산했고 매달 500만원에서 1000만원을 생활비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이 전 부사장은 주장했다.

강동구 아파트에서 이 전 부사장은 같은 시기 도피 중이던 신한금융투자 심 모 전 PBS(프라임브로커서비스) 팀장과 함께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사장은 병원을 가야 할 때는 김 전 회장이 알려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진료를 봤다고 했다. 김 전 회장 측 사람으로부터 치료 약을 전달받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한번은 김 전 회장이 제안해 지난해 1월 강원도 정선의 리조트에서 아내와 자녀를 만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전 부사장은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김 전 회장이 먼저 계획을 잡아 줘 가족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은 거처를 옮길 때는 여러 번 택시를 갈아타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 전 회장이 알려준 아이디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경찰의 휴대폰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 등을 알아보는 등 검거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 전 부사장은 밝혔다.

하지만 경찰에 꼬리가 밟힌 이 전 부사장과 김 전 회장 등은 마지막 은신처인 성북구 게스트하우스 빌라에서 지난해 4월 체포됐다.

이 전 부사장 등이 머물던 빌라에는 이들이 도피 중 사용하던 차명 휴대폰 10대와 현금 4억원이 든 가방, 빌라 곳곳에 흩어져 있던 5만원권 현금 1억3000만원도 경찰이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 변호인은 "최종 도주 결정은 이 전 부사장이 내렸고 김 전 회장의 도움이 없었어도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이 전 부사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 라임이 수원여객 인수를 계획했다가 김 전 회장 측이 인수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이 전 부사장은 "수원여객의 핵심 가치가 차고지 부동산 가격인데 나중에 보니 핵심 차고지 한 곳이 사유지였다"며 "이후 라임의 지분을 파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이때 김 전 회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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