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퇴소는 사형선고다"

2021-07-28 12:27:13 게재

중증발달장애인 가족, 정부 탈시설 정책 비판

중증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정부의 탈시설 정책이 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정부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14일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글을 통해 "장애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 정책은 장애인 가족에게 죽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는 26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30세의 중증발달장애인을 아들로 둔 청원인은 정부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청취 없이 무리하게 탈시설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장애인복지의 주된 화두는 '탈시설'이었지만 정작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은 한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한 채 그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비판했다.

청원인은 무분별한 탈시설화가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의 죽음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 농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심한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었다. 그보다 앞선 3월에도 제주 서귀포에서 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숨진채 발견됐다. 청원인은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정원을 축소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인을 해체해 시설을 통째로 폐쇄하려 하고 있다"며 "거주시설의 입소 정원이 축소되는 와중에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증발달 장애인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겠다는 탈시설 정책이 그 가족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탈시설 정책으로 이용자들이 미신고시설이나 개인시설로 몰리게 되면 장애인들이 안전사고나 학대에 끊임없이 노출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청원인은 "미신고시설이나 개인시설은 행정 기관의 감독 밖에 있기에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으로 장애인을 학대하는 정황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평택의 미신고 개인시설에서는 지적장애인이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청원인 주장이다.

청원인은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지금도 어렵고 힘든 장애인 가족을 위기가정으로 만들고 그 부모를 예비살인자로 만들고 있다"며 "탈시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먼저 '중증발달장애인과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을 핵심으로 한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9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확대시행을 추진중에 있다. 오는 8월에는 정부의 탈시설자립지원로드맵이 발표될 예정이다.

김현아 이용자부모회 공동대표는 26일 성명을 통해 "현재 정부는 탈시설 정책의 실질적 당사자인 이용장애인과 부모를 논의구조에서 배제시키고 한번도 의견을 묻지 않은 채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용자부모회는 정부의 탈시설 정책 철회, 중증발달장애인의 국가책임제 실시, 시설이용대기자 신규입소 허용 등을 주장했다. 23일 이용자부모회는 보건복지부에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대한 주요 10가지 요구안을 전달했다.

안성열 기자/변호사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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