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발목잡은 꼬인 실타래 '트래블룰'

2021-08-25 10:49:50 게재

"적용 1년 연기, 금융당국 약속 어겨"

금융위 "유예하지만 별도 규정 못 둬"

은행, 규정없인 유예 못한다 '이행요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가상자산거래소(코인거래소)들이 트래블룰(Travel rule)을 이행하라는 은행의 요구에 발목이 잡혔다.

트래블룰은 가상자산을 옮길 때 중개인인 가상자산사업자가 이전과 관련된 정보를 받는 사람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불법 자금세탁을 방지하고 추적을 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로 코인거래소 간에 정보 공유 시스템이 구축돼야 가능하다.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법정 시한이 내달 24일로 다가왔지만 은행에서는 트래불룰을 갖추지 못한 거래소에 대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은행이 발급 확인을 해주지 않으면 거래소들은 금융당국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고, 원화거래를 할 수 없어서 영업에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거래소들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트래블룰' 적용을 1년간 유예한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적용시기를 유예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은 이같은 상황에서 최대한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꼬인 실타래를 풀기 어렵게 됐다.

◆"금융위, 보도자료 마다 입장 달라" = 25일 대형 코인거래소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트래블룰 적용을 유예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장이 달라졌다"며 "맨 처음에 한 약속이 나중에 없던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트래블룰의 적용시기를 법 시행 이후 1년이 경과된 2022년 3월 25일부터 하겠다"고 밝혔다. 개정 시행령 제10조의10은 가상자산 이전시 정보제공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의 적용 유예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부칙이 없다.

금융위는 올해 3월 개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직후 "가상자산 이전시 정보제공 의무(법 제6조제3항 및 안 제10조의10)의 경우, 검사·감독을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법 시행일로부터 1년 유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주일 후 발표된 감독규정 개정안에는 트래블룰 의무이행과 관련한 검사·감독 유예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거래소들은 금융당국의 발표를 믿고 트래블룰 시행 시기가 유예된 것으로 알았지만 은행이 의무 이행을 요구하고 나서자 속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1년간 유예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불수리될 가능성이 있는데, 먼저 트래블룰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서 1년간 유예 방침을 밝힌 것"이라며 "다만 적용시기 유예를 규정에 명시하게는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 입법예고에서 "가상자산사업자간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업계 자율적으로 공동의 솔루션을 도입할 충분한 기간이 필요하다"고 유예 필요성을 언급했다.

◆은행은 유예 없다며 원칙 고수 = 하지만 은행의 입장은 다르다. 트래블룰의 적용 유예와 관련해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거래소들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해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해 준 거래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은행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시행령과 감독규정 개정에서 약속의 이행을 놓쳤는지, 의도적으로 뺐는지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금융위 발표는 법적근거가 하나도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은행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트래블룰 시스템 구축까지 요구하는 거 같지는 않고, 거래소간 가상자산 이전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며 "은행과 거래소가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 금융당국이 개입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에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를 한 거래소는 업비트 1곳 뿐이다. 업비트는 자체적으로 트래블룰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업비트는 케이뱅크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확인서를 받았다. NH농협은행은 빅4 거래소 중 2곳인 빗썸과 코인원에 대해 트래블룰 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고 각자의 입장이 달라서 벌어진 일"이라며 "금융위원장에 내정된 고승범 후보자가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취임 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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