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과연 있었나?

2021-09-30 15:48:04 게재

1951년 2월 13일 일본 도쿄의 극동군사령부는 '중공군이 벼룩새끼가 언덕위로 떼 지어 기어오르듯이 엄청나게 몰려오고 있다'며, 38선 북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중공군의 인해전술(human waves)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극동군사령부 예하의 공군은 지상군 지원을 위해 600회 이상 근접지원비행을 하며 폭격, 기관총사격, 네이팜탄 공격을 했는데, 이때 살상한 공산군이 650명 가량이라고 보고했다. 1회 비행으로 1명가량 죽였다는 것이다.

1952년 미국의 저명한 기자 스톤은 '6.25전쟁의 비사(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에서 "만약 비행기가 벼룩 떼처럼 우글거리는 숫자의 적에게 실제 공격을 했다면 1회 출격에 평균 1명의 사상자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극동군사령부는 엄청난 수준의 적의 공세를 조작해냈다"고 주장했다.

◆"인해전술이라는데 공군은 적 발견 못해 당황" = 스톤은 1.4후퇴에 대해서도 '적의 공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후퇴'라고 주장했다. 극동군사령부는 "1951년 1월 1일, 125만 병력의 공산군들이 돌파지점마다 1개 사단씩 투입했다. 1월 2일, 중공군 3개 군단과 북한군 9개 사단의 10만 이상의 병력이 병행적으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1월 3일, 탱크부대 지원을 받은 붉은 무리들은 저공비행하는 유엔 폭격기들이 발사하는 기관포 공격 속에도 떼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월 4일, 공산군은 계속 맹공을 퍼붓고 있으며, 유엔군은 압도적 수의 힘으로 그들이 밀어붙이자 매우 당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스톤은 "1월 2일, 38선을 넘어 떼거리로 쏟아져 내려온다고 하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공군은 그 수많은 적들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도쿄에 있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크리스토퍼 랜드 특파원은 공군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전투지역에 충분한 목표물을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중략) 그들이 아무리 빨리 후퇴한다고 할지라도 만약 공산군대가 공격에 가담하기 위해 38선을 넘어 쏟아져 내려왔다면 공군은 서울과 38선 사이에서 상당한 목표물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중략) 공군이 전투지역에서 목표물을 찾지 못해서 당혹감을 느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라고 썼다.

스톤은 또 "1월 5일 인천상공을 비행한 한 정찰기는 '적군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 비행기에 동승했던 AP통신 버나드 특파원도 '우리는 서울상공을 비행했는데 마치 죽은 도시처럼 조용했다. 비록 5분 동안 순항속도로 날았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텅 빈 거리와 말없는 건물들을 제외하고 사람 하나,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도쿄사령부는 예상되는 패배를 맛보지 않기 위해 승산없는 전투에 앞서 그 도시를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적은 어디에 있었나"라고 적었다.

극동군사령부가 발표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해, 당시 스톤은 '인해전술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인들 대부분도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있었다고 배웠다. 어느 것이 사실일까?

◆아인슈타인, 한국인에게 "스톤책 읽었나?" = 1952년 스톤의 책이 출간된 이후 미국에 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던 한국인 채닝 임(Channing Liem)에게 '이 책을 읽어 보았는가' 질문했다고 한다. 읽었다고 말했더니 '그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채닝 임이 쓴 '한국전쟁: 답이 없는 질문(The Korean War: An Unanswered Question)'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채닝 임(한국명 임창영)은 장면정부 시절 유엔주재 한국대표를 지내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사표를 냈던 인물이다.

2014년 스톤의 책이 아마존 전자책으로 출판됐는데,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소개글에서 "스톤이 이 책에서 말한 것 모두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군 대령 출신 안보전문가 권영근 박사도 "극동군사령부의 발표가 아니고 스톤의 주장이 사실"이라며 "객관적 증거들이 스톤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반면, 극동군사령부의 발표는 입증해 줄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왜 극동군사령부는 거짓된 주장을 발표한 것일까? 권영근 박사는 "6.25전쟁은 극동군사령관이 지휘한 것이 아니고 트루먼 대통령의 철저한 통제 아래 이뤄졌고, 극동군사령부의 발표도 맥아더의 의중이 아니라 트루먼을 포함한 미 합참의 의중"이라며 "트루먼을 포함한 미 합참이 맥아더에게 있지도 않은 중공군, 얼마 되지 않는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펴고 있다고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하게 했던 것은 미국인을 포함해 지구상 도처의 자유진영 국가 국민들에게 공산주의의 위협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라고 분석했다.

6.25전쟁에서 미국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가 남북통일이 아니라, 자유진영 국민들에게 공산주의 위협을 절감하도록 함으로써 미 국방비를 4~5배 증액하고, 지구상 도처에 동맹을 체결함으로서 공산세력 봉쇄의 초석을 만들기 위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공산군의 위협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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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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