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중 쓰러진 직원 5년 만에 회사책임 인정

2021-11-04 12:24:27 게재

법원 "재해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회피 안해"

회의중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회사원에 대해 회사측의 안전조치가 없었다며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직원의 업무상재해가 발병한 지 5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0단독 이종채 부장판사는 A씨가 오비맥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2016년 10월 A씨는 회의중 갑자기 쓰러져 급성 뇌경색증 진단을 받았다. 입사 14년차인 그는 제품을 유통·판촉하는 영업직으로 활동해 왔다.

뇌동맥 경색으로 인한 A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은 73%에 달했다. 실어증을 포함한 영구장해로 매년 1000만원에 가까운 치료비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2019년 말 회사에서 퇴직했다.

주류업체 특성상 영업사원인 A씨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업무를 이어갔다. 거래처가 주로 일반 직장인들이 퇴근하면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영업환경도 변화했다. 회사 측이 영업을 강화하면서 A씨를 비롯한 영업직들은 야간이나 주말에 잦은 근무를 했다. 참다못한 노동조합이 단체교섭과정에서 영업직에 대한 초과노동 문제를 제기했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하기도 했다.

A씨는 2016년 부산에서 서울 동대문으로 근무지를 바꿨고 또 2달 만에 동대문에서 신촌으로 담당지역 변경이 예정돼 있었다. 한 지역에서 120~190곳이 넘는 거래처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쓰러진 10월에만 180곳의 거래처를 방문했다. A씨의 사고 발생전 12주간 주 평균 업무시간은 51시간 55분이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만성과로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는 재차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았고, 휴업급여를 받았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으로부터 업무상재해를 인정받자 이제는 회사에 책임을 물었다. A씨는 "새 영업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과로 및 스트레스에 시달려 과중한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며 "(회사측은) 사용자로서 안전배려의무가 있고, 질병 예측이 가능했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재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A씨가 일반 성인 남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과로했다고 볼 수 없다"며 "회사로서는 업무로 뇌경색이 발생할 것을 알 수 없었다"고 맞섰다.

이 부장판사는 "A씨 근무지변경에 따른 단기적 업무량 증가로 질병발생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회피를 위한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노조측이 단체교섭과정에서 영업직원들의 업무 과중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했으므로 회사도 재해발생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회사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A씨 스스로 건강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업무 스트레스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회사에 알리는 시도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회사 측 과실을 55%로 제한한다"며 "회사는 A씨와 가족들에게 2억3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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