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떠나는 기업들 …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

2021-11-30 11:10:27 게재

일부 세계적 금융기관 아시아 거점 이전 … HSBC·씨티 등은 심천·마카오 잇는 대경제권에 투자

아시아 금융시장의 거점 역할을 해온 홍콩을 떠나려는 금융기관과 기업이 늘고 있다. 중국이 홍콩을 사실상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로 바꾸면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의 기업들이 홍콩의 매력을 상실하고 주요 인력과 기능을 이전했거나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 본토인 심천과 광주, 마카오 등을 홍콩과 연계해 하나의 연안 경제권(대완구)으로 묶으려는 구상이 진행되면서 여기에 매력을 갖는 기업들은 여전히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홍콩의 한 시민이 지난 6월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과 홍콩 반환 24주년을 기념하는 구호가 표시된 광고판을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닛케이 아시아는 최근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잇따라 홍콩에서 인력과 기능을 이전하고 있다"면서 "홍콩이 빛나는 영광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증권업금융시장협의회(ASIFMA)에 따르면, 국제적인 금융기관의 3/4에 이르는 기업이 인력의 확보와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중 절반은 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들어 주요 금융회사의 47개 지역본부가 홍콩을 떠났다. 독일의 코메르츠뱅크 등 6개 이상의 세계적인 은행과 최소 4곳의 자산운용사가 본부를 홍콩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지역본부를 이전한 곳은 주로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의 기업이다. 글로벌 은행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한 책임자는 닛케이 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대체 가능한 거점으로 싱가포르가 어떻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면서 "채용 예정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는지 묻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일국양제'에 따라 자유로운 영업환경이 보장되면서 세계적인 금융기관과 외국기업을 유치해 왔는데 이러한 장점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중국이 홍콩에 대해 국가안전유지법(국안법)을 제정해 사실상 공산당 일당통치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일국양제'는 허울만 남았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이후 계속되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홍콩이 가지는 중국과의 접근성에서 큰 잇점이 없어진 측면도 있다. 실제로 중국 중앙정부는 코로나19 정책으로 사실상 '제로 코로나'를 실시하면서 본토는 물론 홍콩으로의 입국과 내부 이동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최대 3주간 격리를 의무화하는 등 지난 18개월 동안 사실상 국경이 폐쇄됐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데이먼 최고경영자가 이달 들어 홍콩에 들어갈 때 격리가 면제됐지만 이러한 경우는 특수하다.

해드헌터들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750만명 홍콩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부유층도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지난해 홍콩 인구는 전년대비 1.2% 줄었다. 이는 1960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로 이 가운데 수만명이 이미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들 부유층은 홍콩을 빠져 나갈 때 대부분 연금도 인출해 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이다. 세계적인 미디어도 홍콩을 빠져 나가고 있는데 미국 뉴욕타임즈가 최근 아시아지역 지국을 홍콩에서 한국으로 이전한 것이 대표적이다.

홍콩의 거점 역할은 그 사이 싱가포르와 상하이가 일부 대체하고 있다. 구인회사 셀비 제닝스가 올해 7월 아시아·태평양지역 금융전문가 1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홍콩주재원의 69%가 싱가포르로 옮기고 싶다고 답변했다. HSBC가 세계 각국에 거주하는 자사의 주재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살기 편한 도시에서 홍콩은 지난해 20위에서 40위로 급락했다. 아시아에서는 태국보다 낮고, 필리핀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평가했다. 싱가포르가 9위, 대만은 15위에 해당했다.

하지만 홍콩이 이대로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섣부른 관측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중국 기업들이 홍콩으로 오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 주요기업의 지역사무소가 14개 늘었다. 중국기업의 수는 2080개사로 늘어나 미국과 일본의 기업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많은 중국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하거나 이전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도 홍콩의 역할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표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건 '대완구' 구상을 통해 홍콩을 금융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대완구 구상이란 홍콩을 중심으로 인근 마카오와 중국 본토의 심천, 광주 등 7개 도시를 묶어 하나의 대경제권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역내 총인구는 7000만명을 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1조7000억달러에 달해 캐나다와 한국에 맞먹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홍콩에서 빠져 나가지 않고 오히려 투자를 확대할 구상도 갖고 있다. 특히 올해 9월부터 대완구 지역내에서 상호자산운용에 대한 제도를 통합하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수수료만 수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여 세계적인 금융회사 입장에서 쉽게 놓치기 어려운 기회이다. 실제로 HSBC와 시티그룹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회사는 핵심 인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HSBC가 올해 9월에 미국과 호주 등의 21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4곳 가운데 3곳은 향후 3년간 대완구 지역에서 새롭게 사업을 시도할 계획이 있다는 답변을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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