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사망 진상조사법 놓고 '부처간 협의' 탓 시간끄는 정부

2021-11-30 12:03:39 게재

"법안발의 1년 다 됐는데 업무방기" 국회서 질책

복지부 차관 "행정부 노력 부족했다" 고개 숙여

'3살 의붓아들 사망' 계모에 아동학대살해 혐의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를 통한 근본적 해법 필요성을 제기한 법안에 대해 정부는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미적지근한 입장을 내놨다. 국회에선 질책이 쏟아졌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아동학대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법안 심사가 이뤄졌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총 4건(아동복지법 개정안 3건, 특별법 1건) 상정돼 있다. 조사기관의 소속이나 권한 등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핵심골자는 각종 법률개정이나 아동학대 대응 강화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치명적인 사건에 대해선 다시 들여다보고 진상조사를 통해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보자는 것이어서 국회에서 함께 심사되고 있다.

이날 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관련 법안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자, 보건복지부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내놨다. 소위 회의에 참석한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조사분석을 통해 아동학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는 공감을 한다"면서도 "다만 기구 설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해야 될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분석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행안부 경찰청, 또 기구 설치에 대해서도 행안부 기재부 등과 세부적인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참고로 아동권리보장원 내 아동학대중대사건분석팀을 운영중인데, 실효성도 좀 보아가며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 차관의 이같은 입장표명에 국회의원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인이 사건이 1년이 지났고, 법안 발의도 2월"이라면서 "관련 부처와 협의를 하고 논의를 하려면 할 수도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무엇을 하셨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1년 전과 지금 뭐가 바뀌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면서 "지금 협의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건 복지부의 상당한 업무방기"라고 비판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사망사건은 많은데 왜 아동학대에 국한해서 상설조사기구를 마련해야 된다고 하는지 왜 그런 것 같으냐"면서 "피해자가 의사표시를 제대로 못한다. 그래서 특별히 국가가 보호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살펴서 (재판이나 수사에서) 놓친 부분을 찾아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일반적으로 행안부나 법무부가 하는 말에 치우치면 곤란하고 복지부는 아이의 입장에서 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동권리보장원 산하에 이미 아동학대사건 분석팀이 있다는 복지부의 핑계 섞인 설명에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신 의원은 "거기서 얼마나 아동사망사건에 대해 제대로 진상조사를 할 수 있겠느냐"면서 "아이들이 사망할 때마다 그 원인이 뭐고 (중략) 어떤 것들이 허술해서 어떤 것들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중략)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하나의 사례인데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1년 동안 우리가 해야 될 책임을 너무 방기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질책이 연속되자 양 차관은 "행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날 소위에선 결국 관련 법안은 의결되지 못한 채 다음번 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한편, 서울 강동구에서 세살배기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의붓어머니에 대해 경찰이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는 29일 의붓어머니 이 모씨를 상습아동학대 및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친부도 방임 및 학대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아동학대살해죄는 3월 '정인이법'으로 알려진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신설됐다. 아동학대살해죄를 범하면 사형, 무기징역 또는 징역 7년 이상에 처할 수 있다. 애초 이씨에게 적용됐던 아동학대치사는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경찰은 이씨가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갖고 장기간 의붓아들을 지속해서 학대했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아동에 대한 국과수 부검 구두소견에서도 직장(대장) 파열 등의 외상은 강한 가격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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