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극해항로 개척 박차

2021-12-02 11:06:04 게재

수상원전 활용 … FT "천연자원 접근도 용이"

러시아 북동부 항구도시인 페베크는 한때 소비에트 강제수용소 '굴라크'로 악명 높았다. 하지만 이젠 북극해를 통한 경제개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곳이다. 이곳엔 '아카데믹 로모노소프'가 정박해 있다. 세계 최초 물위에 띄운 원자력발전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북극해를 관통하는 주요 항로를 개척하고 천연자원을 적극 발굴하려는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전략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고 전했다.

페베크 항구는 1년 중 넉달 동안만 부동항이 된다. 하지만 '북극해항로'로 불리는 상선항로의 중심지가 되고자 한다. 기후변화로 점차 북극해 관통이 쉬워지면서다. 게다가 페베크항은 아카데믹 로모노소프에서 생산된 전력을 활용해 추코타 자치관구로 진입하는 관문을 꾀한다. 추코타는 알래스카와 가까운 지역으로 금과 은, 구리, 리튬, 기타 광물이 풍부하다.

세계 최초 수상 원자력발전소인 아카데믹 로모노소프.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페베크 부시장인 막심 주르빈은 "북극해항로와 항구가 없다면, 페베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베크 주민들은 항구에 정박한 수상 핵발전소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 지역 사업가인 이고르 라나프는 "핵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러시아인들은 더 이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갖은 풍상을 겪으며 살아왔다. 이젠 낙관적이어야 한다"며 "우리는 원자력발전소가 최신 기술로 만들어졌기에 안전하다고 들었다. 그러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은퇴 회계사 나탈리아 코베슈니코바는 "핵발전소가 이곳에 있어서 좋다. 1년 내내 온수와 난방이 끊기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북극해항로 개척은 러시아 국영기업이자 세계 최대 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이 맡고 있다. 아카데믹 로모노소프를 제작의뢰한 것은 물론 핵발전 쇄빙선도 계획중이다. 이를 통해 2025년쯤엔 1년 내내 북극해를 항해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로스톰은 투자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북극해 개척이 큰 성과를 낼 것으로 자신한다. 이 기업 대표 알렉세이 리하셰프는 "우리에게 이는 주요 사업이다. 우리는 북극해 개척 프로젝트를 투자 사업성에 기반해 판단한다"고 말했다.

2023년 최대 발전용량에 다다르는 페베크 핵발전소는 여러 개의 원자재 발굴 프로젝트에 전력을 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광산기업 폴리메탈이 개발중인 마이스코예 금광, 러시아 최대 주석광산인 피르카카이 등이다.

로사톰은 2030년 이전 차운스카야 만 인근에 4척의 수상 핵발전소를 추가할 계획이다. 추가된 발전소는 바임스카야 구리광산 개발 프로젝트에 전력을 공급한다. 구리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확산으로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는 원자재 중 하나다. 바임스카야 광산은 소련 시절 확인됐지만 기술과 장비, 인프라 부족으로 개발 진척이 어려웠다.

120억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광산기업 카즈 미네랄의 CEO 올레크 노바추크는 "주변에 아무 것고 없는 곳이다. 전기와 도로가 없어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수상 핵발전소가 건설되면 이 프로젝트는 약 60년 동안 안정적인 가격에 전력을 공급받게 될 전망이다.

추코타 개발과 함께 북극해 개척은 러시아의 숙원 사업이었다. 러시아는 이번주 북극해를 접한 6개국 모임인 '북극평의회' 총회를 주최한다.

러시아는 2017년 북극해에서 처음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해 북극해항로로 수출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주요 광물이 풍부한 북극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극해항로 경유 수송량은 2000년 150만톤에서 지난해 3300만톤으로 늘었다. 주로 천연가스와 석유가 이곳을 관통했다. 2018년 재선된 푸틴 대통령은 당시 "2024년까지 북극해항로 수송량을 8000만톤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로사톰은 10년 뒤 북극해항로를 경유하는 러시아 해상 수출량이 1억100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2025년쯤엔 다른 나라도 이용하는 국제적 수송로로 발돋움할 것으로, 2030년이면 최소 3000만톤의 국제적 수송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 초 수에즈운하의 물류정체 사고는 북극해항로의 매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로사톰은 "겨울엔 쇄빙선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북극해항로를 통할 경우 해상물류 운송 기간이 대폭 짧아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국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가는 물류의 경우 북극해항로를 거치면 27일에서 28일이 걸린다. 반면 수에즈운하를 거치면 40일이 소요된다. 로사톰 부사장인 키릴 코마로프는 "1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실은 선박수송에서 12일의 격차란 대단한 차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의 다국적 물류기업이자 항만 운영사인 'DP월드'는 올해 7월 로사톰과 북극해항로 개발 파트너십을 맺었다. 인프라 구축과 상선 확보에 20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DP월드 CEO인 술탄 아메드 빈 술라옘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와해됐다. 때문에 보다 많은 상선항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순풍이 된다고 해도 1년 내내 효율적인 항로를 유지하는 건 로사톰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북극·남극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북극 만년설은 가장 따뜻한 9월엔 절반으로 줄고 가장 추운 3월엔 10% 줄었다. 이 연구소는 "21세기 중반이 되면 여름엔 2/3가, 겨울엔 절반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양 온난화는 운수송 비용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만년설이 줄어들면 쇄빙선 작업이 필요 없어 더 빠른 수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기예보 정확성과 겨울철 만년설의 안전성은 여전히 문제다. 특히 북극해항로의 동쪽 영역이 그렇다. 이달 들어 예상과 달리 북극해 얼음이 빨리 형성됐다. 이 때문에 24척의 상선이 바다 한가운데 발이 묶였다. 로사톰의 리하셰프 대표는 "일기예보의 부정확성, 북극해항로 수요의 증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물류일정 변경 등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한편 페베크 주민들은 지역 경제개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9년 전 선교활동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지금은 IT전문가로 일하는 파벨 로흐코프는 FT에 "당시 암흑의 도시였다. 처음 수년 동안 삶 자체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떠났다. 마을이 폐쇄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다 원자력발전소가 지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마을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이제 개발의 첫발을 떼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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